2009년 06월 11일
수퍼개미 투자비결
①김정환…7000만원으로 120억원 번 비결
슈퍼개미…. 개미 투자자로 출발했지만 남다른 안목과 투자기법 등을 통해 성장한 '큰 손'을 말한다. 증권시장에서 이들의 영향력은 말 그대로 '슈퍼'급이다. 이들의 일거수 일투족에 따라 해당종목 주가는 춤춘다. 남다르게 높은 수익률을 내는 이들은 도대체 어떻게 투자할까. 어떤 투자철학을 갖고 어떤 기법을 이용할까. 가치투자·단기 매매 등으로 성공한 분야별 전업 투자자, 상장사 인수·합병(M&A)를 시도중인 사업가, 파생상품에 강한 승부사 등 슈퍼개미들을 찾아가 그들의 투자비밀에 대해 들어봤다. <편집자 주>
'따르릉~'
2004년 6월 날씨가 무더워질 무렵. 7000만원을 들고 가치투자를 준비하고 있던 김정환씨(40·현 밸류25 대표)는 급한 전화를 받았다.
"자사주를 매입하려고 하는 데 우리회사 적정주가가 얼마나 돼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전화를 건 사람은 먼 친척뻘인 웅진코웨이 임원 A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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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당시 주식 동호회인 '쥬라기'의 창립 임원으로 집필과 강의를 했다. 친척 A씨는 김씨에게 한 수 배우기 위해 의견을 물었다. 자사주 취득을 앞두고 외부에서 보는 웅진코웨이의 적정가치를 알고 싶었던 것.
김씨는 곧바로 웅진코웨이 기업분석을 시작했다. 분석결과 적정주가가 2만원 가까이 나왔다. 당시 4000원대에 머물던 주가의 5배에 달했다. 김씨는 웅진코웨이가 정수기 렌털업계 1위로, 막강한 영업력을 지녔다는 점에 높은 점수를 줬다.
"렌털업체는 초기에 비용이 많이 듭니다. 하지만 나중에 지속적으로 현금이 들어오는 사업구조와 엄청난 영업능력을 갖고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렌털사업을 통해 고객에 대한 데이터를 갖고 있으면서 영업사원이 매번 고객집을 방문해 뭐가 필요한 지 정확히 파악할 수 있습니다. 웅진코웨이는 정수기에서 공기청정기, 밥솥 등 생활가전을 추가하기만 하면 되는거죠."
김씨는 이전까지 다른 투자자처럼 기술적 분석, 정보매매, 상한가 따라잡기 등 다양한 투자방법을 구사했었다. 그러나 수년간 연구 끝에 저평가된 종목에 투자하는 가치투자가 더 나은 투자방법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던 중 친척으로부터 기업분석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게 됐고, 웅진코웨이가 2만원의 가치를 지녔는데 주가는 4000원대라는 점을 알게 됐다.
김씨는 준비해놨던 투자금 7000만원을 웅진코웨이에 몽땅 투자했다. 주당 4000원 가량에 매입한 웅진코웨이는 상승흐름을 타기 시작했다. 1년여 만에 주가는 1만8000원대로 올랐고 김 대표는 이때 보유주식을 전량 처분했다. 첫번째 가치투자가 성공한 것이다.
웅진코웨이뿐 아니다. 이후 김씨는 투자하는 종목마다 대박을 냈다. 성장가치를 보고 투자한 하이닉스를 1만2000원대에 매입해 2만~2만4000원대에서 처분했다. 자산가치를 보고 투자한 이건산업과 가로수닷컴(현 SG&G)은 7000원대와 1200원대에 사서 1만4000원대와 3600원대에 팔았다. 몇 년이 지나지 않아 투자원금은 수십억원대로 불어났다.
◆ 김정환씨를 스타로 만들어 준 '삼천리자전거'
김씨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워런 버핏. 버핏이 세운 버크셔헤서웨이 같은 회사를 설립해야겠다는 꿈을 갖고 김씨는 2005년 자산관리회사인 밸류25를 설립해 지금까지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재야에서는 이제 김 대표를 소문난 주식쟁이로 알아준다. 하지만 옛날에는 그의 실력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가치투자를 표방했지만 실제로 주식을 사고 팔아 수익을 냈는 지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이같은 불신을 종식시키고 자신의 이름값을 높이고자 삼천리자전거 지분 5% 이상을 보유한 주주가 되기로 결심했다. 공시를 통해 실력을 검증받기 위해서였다.
지난 해 1월 김 대표는 처음으로 삼천리자전거 주식 35만3220주(5.27%)를 장내에서 매수했다고 공시했다. 지난 해 5월에 8만9477주(1.33%)를 추가매입, 보유주식을 44만2697주(6.60%)로 늘렸다. 투입된 총 금액은 15억5800만원(주당 매입단가 3520원)이었다.
6개월 후인 지난해 11월 김 대표는 보유지분 전량을 주당 6000원에 매도했다. 매각차익만 11억원에 이른다. 불과 6개월만에 70% 가량의 수익률을 기록한 것.
김 대표가 삼천리자전거에 투자한 것은 지난해가 처음이 아니었다. 2007년에도 투자해, 큰 성과를 냈다. 2007년에는 공시할 만큼의 수량을 매입하진 않았지만 2008년보다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 2200원대에 매입해 5000원에 처분했다.
"현재가 2730원. 웰빙 시대를 통한 자전거수요의 확대와 중국현지 생산을 통한 원가 절감 그리고 자전거전용도로의 확충 등으로 실적호전. 목표가 7000원. 보유기간 1년." 김 대표가 2006년 12월 21일 자신의 카페에 올린 삼천리자전거에 대한 추천글이다.
그가 삼천리자전거에 주목한 것은 2006년말부터였다. 그렇다면 김 대표가 왜 삼천리자전거를 추천했을까.
"어느 날 한강둔치에 갔다가 자전거 타는 사람이 굉장히 늘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래서 선진국 사례를 찾아봤습니다. 선진국은 자전거 보급률이 40%가 넘는 데 반해 우리나라는 4%에 불과했죠. 자전거가 발전하는 단계를 보면 자동차 보급률이 멈춘 다음에 늘더라고요. 또 자전거 전용도로, 서울시의 공영 자전거사업이 추진되고 있었습니다. 시장점유율 55%로 독점기업이나 다름없는 삼천리자전거의 수혜를 확신했습니다. 지구온난화로 겨울이 따뜻해지고 있다는 점도 삼천리자전거 주가에는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김 대표의 이 같은 확신은 단일종목 최대 수익이라는 과실로 이어졌다. 두 차례에 걸친 삼천리자전거 매매를 통해 김 대표는 30억원에 가까운 수익을 올렸고, 7000만원이었던 투자금은 80억원을 넘어서게 됐다.
◆ 남들과 다른 가치투자…"수익 확정이 제일 중요하다"
"지난해 하락장에서도 실패하지 않았던 것은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던 삼천리자전거 주가가 코스피 지수 900대로 하락하던 시기에 상승세를 탔기 때문입니다. 언젠가는 그리될 줄 알았지만 그 타이밍에 급등한 건 운인 것 같습니다. 삼천리자전거 팔아서 주가급락기 저점에 좋은 종목을 잡을 수 있었다는 게 굉장히 큰 운이었습니다. 누구보다 운이 좋았던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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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밤잠도 못자고 미국 나스닥시장을 지켜보고 모든 경제지표, 뉴스, 각종 정보를 챙겨야했습니다. 주식 투자하는데 행복함이 없었죠. 어떻게하면 편안한 마음으로 투자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가치투자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그의 가치투자 방법에는 여타 가치투자자와 다른 점이 있다. 한 종목을 무작정 오래 들고 가진 않는다는 나름대로 철학이 있었다.
"가치투자자라고 해서 오랫동안 보유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수익을 일정부분 확정해서 심리적 안정을 가져오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봅니다. 짧은 시간에 많이 오르면 목표가에 도달하지 못해도 파는 게 맞고 한 종목만 고집할 필요가 없습니다. 투자에는 전술이 들어가야 합니다. 주가가 올라 주식가치에 근접한 종목을 고집하기보다 가치에 비해 더욱 저평가된 종목으로 갈아타는 게 나은거죠."
삼천리자전거도 그래서 팔았다고 한다. 주식시장이 급락하면서 삼천리자전거보다 훨씬 저평가된 종목들이 많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삼천리자전거로 대박을 낸 김 대표는 다우기술, 성창기업 등을 3000원대와 1만원대에 매수했다. 그는 현재 투자금액이 120억원 가량으로 불어났다고 한다.
◆ 자산·배당·성장…가치투자 3가지 비법은
그렇다면 김 대표의 투자비법은 무엇일까. 그는 가치투자 방법 세 가지를 제시했다. 우선 '자산가치'가 높은 기업에 주목하라고 주문했다. 자산이 많으면 기업이 망해도 안전판이 생기기 때문이다.
"은행이 돈을 빌려줄 때 고객의 자산을 담보로 설정하는 것처럼 우리도 똑같이 기업의 자산을 담보로 잡고 투자하자는 겁니다. 기업이 망하더라도 청산가치가 주가보다 높은 회사에 투자하면 전혀 문제가 없다는 거죠. 특히 언제든지 현금화할 수 있는 유휴 자산이 많은 기업들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김 대표는 BPS(주당순자산가치)를 이용해 자산가치를 평가한다. 더욱 정확한 자산가치를 알기 위해 해당종목의 주요 부동산을 조사해 주변시세를 알아보는 등 직접 조사에 나서기도 한다. 토지는 장부상 취득원가로 기록돼 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지가가 상승한 경우가 많다. 시가로 자산가치를 산정하면 더욱 정확한 자산가치를 조사할 수 있다.
그는 두번째로 방법으로 '배당가치'를 제시했다. 대체로 우량한 기업은 배당을 많이 준다. 높은 배당은 곧 주주우선정책을 펴고 있는 좋은 기업이라는 방증이기도 하다는 주장이다.
"은행 이자보다 배당수익률이 높은 회사에 투자해 배당을 받는 거죠. 회사입장에서는 투자자들 덕분에 이익을 많이 내, 감사의 뜻으로 배당을 주는 것이어서 배당이 높은 기업은 대체로 주가상승률도 높습니다."
이 같이 배당가치주에 투자하는 것은 시세차익과 배당수익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에 안전한 방법이라는 얘기다.
김 대표는 마지막 투자방법으로 '성장가치' 투자를 들었다. 기업이 영업활동으로 벌어들인 수익을 투자하고, 그 투자로 인해 추가 성장하는 선순환이 이뤄지는 기업에 투자하라는 의미다.
"간단히 말하면 점점 덩치가 커져가는 기업을 말합니다. 기업의 매출액이 증가하면 영업이익이 늘어나고 현금흐름이 좋아질 것입니다. 그러면 기업은 이익을 설비에 투자하고 다시 매출이 늘고 영업이익이 증가하는 그런 회사죠. 이런 회사에 투자한다면 끊임없이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증가하면서 기업의 가치도 증가하게 됩니다."
◆ 확신이 든 종목에만 투자해라
김 대표는 많은 종목에 투자하지 않는다. 잘 아는 종목 서너 개에 집중하는 편이 더 높은 수익을 안겨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기업에 대한 확신이 생기면 마음이 편하게 됩니다. 마음이 편할 때까지 주식을 줄여야 합니다. 보유주식을 적게 가져가야 매매 전술을 잘 세울 수 있고, 그대로 실행할 수 있습니다. 저는 매일 아침 사무실에 나오면 제일 처음 마인드 컨트롤을 하면서 그날의 매매 전술을 세웁니다. '어떤 종목은 얼마되면 몇 주를 팔고, 만일 더 오르면 다른 종목으로 갈아타자'는 식이죠."
하지만 주식투자에서 발군의 기량을 발휘하는 그에게도 손실을 안겨준 종목은 있었다. 바로 여성 의류업체 한섬이다. 그는 한섬을 지금도 보유하고 있다. 손실률은 20% 정도라고 한다. 다행히도 투자비중은 크지 않은 편이란다.
"주가를 보지 말고 회사의 실적을 보고 손절매 여부를 결정합니다. 한섬은 디자인 브랜드와 자산가치를 보고 투자했습니다. 예상했던 매출이나 영업이익 감소 등이 나타나면 과감하게 손절해야 하지만 한섬이 아웃렛을 만들면서 재고회전율이 좋아지고 있어, 좀 더 지켜볼 계획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개인투자자들에게 조언 한 마디를 했다.
"자신만의 매매원칙과 철학을 완벽하게 세울 수는 없지만 주식시장의 성격과 정형화된 공식 등을 스스로 익혀, 실패하더라도 그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원칙을 하나 둘 정립해나가야 합니다. 자신만의 원칙을 지키며 흔들리지 않는다면 결코 실패하지 않는 행복한 투자자가 될 수 있습니다."
②손용재…"카드깡 신세에서 억대 연봉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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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믿으시겠지만 특별한 투자기법은 없습니다. 큰 욕심 안 부리고 원칙을 지키는 게 비법 아닌 비법입니다"
전업투자만 10년을 했다는 재야 주식투자 고수 손용재씨(41)는 투자비법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이미 수많은 투자 기법들이 각종 서적과 신문기사 등을 통해 알려진 만큼, 특별하거나 새로울 게 없다고 했다.
서울 신도림역 근처 오피스텔에서 옛 투자동호회 등 동료 4∼5명과 함께 데이트레이딩을 하는 그는 마치 불가(弗家)에서 선문답하듯 이야기했다. 투자비법은 스스로 알고 있는 원칙 등에 이미 담겨 있다는 얘기다.
◆ 데이트레이더의 철칙은 손절매
손씨는 작년 하이투자증권(옛 CJ투자증권)이 진행한 실전투자대회에서 10주 동안 388%의 수익률을 올리며 우승을 차지했다. 같은 해 두 달간 열린 교보증권의 실전투자대회에서는 수익률 697%를 기록해 역시 1위에 올랐다.
2007년에 참가한 하이투자증권 실전투자대회의 수익률은 921%에 달했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 차례 분, 초 단위로 거래하는 스캘핑(Scalping,초단타매매)으로 거둔 성과다.
"데이 트레이더의 철칙은 손절매라고 봅니다. 어차피 3% 떼기(수익을 내는 것) 하는 것인데 한 종목에서 2% 넘게 손해 나면 더 볼 필요도 없이 매도해야죠. 그런데 투자자중 열이면 아홉은 이걸 못 해요"
손씨도 손절매 원칙 하나를 지키는데 수많은 대가를 치러야 했다. 1990년대 후반 전업투자자로 나선 이후 번번히 주식투자에 실패해 한때는 빚이 4억원을 넘기도 했다. 돈 빌릴 곳조차 없어 카드깡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하며 살았다. 주식투자로는 절대 돈을 벌 수 없다고 생각한 것도 이때쯤이다.
손씨는 그러나 그대로 주저앉지 않았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똑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부터 사법고시 준비하듯 하루 온종일 주식투자에만 매달렸다. 시장에 알려진 나름 고수라는 사람들을 찾아가 조언을 듣기도 했다.
"고시생들은 언제가 됐든 합격만 하면 된다는 생각에 몇 년씩 공부에 매달리잖아요. 저도 당장은 힘들지만 언제가 된다는 확신을 갖고 미친듯이 매달렸거든요. 그러니까 언제부턴가 (주식매매로) 절대 안 잃게 됐습니다"
◆ 종목선정은 시장이 알아서
손씨가 꾸준히 수익을 내기 시작한 것은 2006년 하반기부터다. 대세 상승장이어서 시장 상황이 워낙 좋기도 했지만, 손씨 나름대로 세운 투자방법이 적중한 덕분이다. 이후 지금까지 2년여 동안 수익을 못 낸 달이 없다. 원칙을 지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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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비법이 없다고 해도 투자 방법은 있을 터. 일단 종목을 어떻게 선정하는 지 물어봤다.
"종목은 제가 고르는게 아닙니다. 시장에서 알아서 골라줍니다. 요즘에는 태양광과 풍력 발전 등 대체에너지 관련주와 새만금, 대운하, 자전거, 바이오 테마주 등이 투자 대상입니다. 삼성전자 하이닉스 등 반도체주도 눈에 띄네요"
한마디로 강한 테마가 형성돼 있거나 확실한 재료로 증시 상황과 관계 없이 오를 수 있는 종목만 쳐다본다는 얘기다.
"수급이 받춰줘야 마음대로 사고 팔 수 있습니다. 무조건 거래량이 많은 게 좋은 종목입니다. 외국인이든 세력이든 수급을 터뜨려주면 그 때 들어가도 늦지 않습니다. 이들이 차려놓은 밥상에 저는 수저 하나 얹을 뿐이에요"
반대로 거래가 별로 없는 종목은 절대 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일부 투자자들은 잠복근무 하듯 스스로 좋은 종목이라고 판단하고 미리 사놓고 오르기만을 기다리는데 그런 종목은 절대 오르지 않습니다"
◆ 현재가와 20일선을 체크하라
이렇게 종목을 선정한 뒤에는 딱 두 개만 체크하면 된다는 주장이다. 현재가와 20일 이동평균선이 그것이다.
"증권사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의 현재가 화면을 보고 있으면 주문이 체결되는 게 눈에 보입니다. 거래하는 사람들의 기운을 확인할수 있는 화면이죠. 여기서 기세를 확인하고 나면 단가를 나름대로 정해 주문을 하고, 저가 매수 후 곧바로 파는 것이죠. 단, 아무리 저가에 매수한다 해도 생명선인 20일 이평선 이하에서는 절대 사면 안 됩니다"
실제 그의 단말기 화면에는 개별 종목의 현재가 창 수십개와 20일 이동평균선, 그리고 뉴스 화면만이 떠 있었다. 각종 차트들로 가득 찬 데이 트레이더들과는 차별화 된 부분이다.
"심리선, 이격도, 스토캐스틱 등 투자 보조지표는 안 믿습니다. 이미 지나간 기록을 연결한 것에 지나지 않거든요. 상승장에서는 그래도 잘 맞는 것 같은데 작년 11월 같이 장이 폭락해 버리면 차트가 다 망가집니다. 보조로 보면 좋긴 하겠지만 투자지표가 될 수는 없다고 봅니다"
투자 보조지표 대신 손씨는 공시와 뉴스를 꼼꼼히 챙긴다. 오후 3시 장이 끝나고 나면 장중에 미쳐 확인하지 못했던 이슈를 분석하고, 급등락 한 종목의 재료를 진단하는 시간을 갖는다. 바둑으로 치면 복기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야만 투자종목 선정과 향후 전망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그는 이렇게 투자해서 한 달에 2000만~3000만원 가량을 번다고 했다. 종자돈은 5000만원이다. 수익이 나면 한 달에 한 번 정산을 해서 종자돈 5000만원 이외에는 모두 다른 계좌에 넣는다.
"투자는 기법이 30%이고 나머지 70%는 마인드에요. 결국 데이 트레이더는 투자 철학을 행동으로 옮기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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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마지막으로 투자원칙을 세우기 전까지 소액 투자를 통해 트레이딩 경험을 쌓으라고 조언했다. 그리고 실수가 있으면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했다. 잘못된 투자는 곧바로 인정하고 정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멋모를 때 손해보다가 이제 좀 알 듯 하니까 돈이 없다.' 실수를 줄여나가는 게 중요합니다. 원칙을 지키면서 꾸준히 한다면 주식투자로 수익 내기가 생각보다 어렵지 않습니다"
③박진섭…`대형주 매매로 왕대박`
“저는 중소형주는 안 봐요. 대형주만 매매합니다.”
개인투자자들은 중소형주를 단기매매하는 경우가 많다. 초단타매매도 잦다. 그러나 증권사 실전투자대회에서 3회나 입상한 ‘검증된 고수’ 박진섭(42) 메리츠증권 부장은 다르다. 대형주, 그 중에서도 외국인과 기관이 많이 매매하는 코스피200 종목들을 주로 거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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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형주가 좋아요”
박 부장이 코스피200에 포함된 대형주를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는 주식을 사놓고 퇴근한 후에도 마음이 편해야 한다고 봅니다. 언제 무슨 일이 터질 지 모르는 중소기업과 달리, 대기업은 시스템을 갖추고 경영하니까 상대적으로 안전하죠. 변동폭도 꽤 크고요. 전에는 대형주가 하루에 2~3%만 올라도 급등했다고 했는데, 지금은 하루 변동폭이 10% 넘는 경우도 종종 있잖아요. 또 대형주는 외국인과 기관이 많이 매매하니까 물량 수급상황도 좋거든요.”
한마디로 대형주는 △안전하고 △변동성도 커진 데다 △수급까지 좋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대형주 매매의 장점이 충분한데 굳이 작전 세력이 자주 끼어드는 중소형주를 매매하는 것이 이해가 잘 안됩니다. 저는 코스닥 종목을 전혀 매매하지 않아요.”
그가 전업투자자로 투자대회에서 우승했던 2005년에도 대회 거래 종목의 절반은 대형주, 나머지는 중소형주였다. 그는 2006년부터 매매대상을 대형주 중에도 외국인과 기관이 주로 매매하는 종목으로 더욱 압축했다. 하루 거래량이 30만주 이상인 대형주 100여 개를 주로 매매한다.
◆ 시련 딛고 실전대회에서 3번 입상
박 부장이 처음부터 대형주를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투자자 생활을 시작한 후 초기 몇 년간은 중소형주 위주로 급등주 따라잡기, 미수몰빵, 깡통계좌차기 등 초보 개미들이 숱하게 겪는 시행착오를 모두 겪었다.
“주택은행(현 국민은행) 행원 생활을 거쳐 라이나생명 지부장을 할 때 주식투자 하는 동료를 보고 처음 주식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회사생활 하면서 주식투자를 같이 하려니 쉽지가 않더라구요.”
이럴 때면 주식보다 직장을 택하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심리일 터. 그러나 박 부장은 거꾸로였다. 아예 ‘전업 투자를 하면 더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주식투자 입문 1년 만이던 1999년에 용감하게(?) 사표를 던졌던 것.
당시 종자돈은 5000만원. 그러나 그 돈이 200만원 수준으로 쪼그라드는 데 1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정신이 번쩍 들었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생활비가 부족해 신용카드까지 연체되는 등 안팎으로 절박한 상황에 몰렸다.
그제서야 투자의 기본도 모른 채 무모하게 덤볐다는 반성이 들었다. 비로소 그는 공부를 시작했다. 투자관련 서적들을 모조리 찾아 읽고, 하루에 수백 개 종목의 차트도 보고, 다양한 매매기법을 시험하며 자신만의 투자방식을 찾아 헤맸다.
수업료(?)를 계속 내면서 찾아낸 그의 투자 비법은 단순하다. 박 부장은 기본적으로 현재가 화면에서 대량거래가 터진 종목들을 선호한다. 또 5일 이동평균선과 20일 이동평균선이 정배열된 시기를 매매 타이밍으로 잡는다. 초보들이 차트를 보고 매매를 많이 하지만, 그 동안의 경험 끝에 복잡한 차트는 실제로는 별로 소용이 없다는 결론을 냈다.
"차트는 과거를 얘기하지만, 현재가 화면은 주식의 현재 상태를 가장 정확하게 보여준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그가 활용하는 보조지표라고는 이동평균선과 엔빌로프(이평선을 중심으로 이격도를 가늠하는 지표) 등 딱 2개다.
이 같은 투자기법을 터득한 것이 2002년. 그때부터 극적인 반전이 이뤄졌다. 잃기만 하던 그에게 비로소 수익이 쌓이기 시작했다. 투자실적이 안정되어 가던 어느 날, 그는 자신의 실력을 검증해보고 싶어 2005년에 처음으로 실전투자대회에 나갔다.
처음으로 참가했던 제4회 대우증권 실전투자대회에서 그는 400%대의 수익을 올려 3위를 했다. 같은 해 한화증권 대회에서는 200만원을 2400만원으로 불려 무려 1202%라는 수익률을 기록하며 1위에 올랐다. 여세를 몰아 역시 그 해에 참가했던 삼성증권 대회에서도 2위를 했다. 운 좋게 한번 ‘반짝’ 우승한 게 아니었던 것이다.
실전투자대회를 거치며 그는 '수익률 관리'의 중요성에 눈을 떴다고 한다. "대회에서는 정해진 기간 동안 최대의 수익률을 올려야 합니다. 매일 꾸준히 수익을 쌓아가는 거죠. '큰 것 한방'을 노리는 전략은 금물입니다. 그 한방에 큰 손실을 볼 수 있거든요"
대회를 마친 후에도 꾸준한 리스크 관리로 안정된 수익률을 내는 것은 그의 중요한 철칙이 되었다. '슈퍼개미급'이면 '큰 거 한 방'으로 대박을 노릴 것이라는 세간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투자자문사를 만들다
연이은 실전대회 입상 이후 잠시 동양종금증권을 거쳐 그는 다른 실전대회 우승자 2명과 의기투합, 2006년 12월에 투자자문회사를 설립하고 대표를 맡기도 했다.
“전업하면서 혼자 틀어박혀 일하는 것보다는 여럿이 어울려 일하는 것이 성격에 잘 맞고, 투자의 고수들이 모이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당시 증시도 좋아서 시기도 괜찮다고 봤습니다.”
그러나 주식투자로 수십억의 자산을 쌓은 ‘실전 매매의 강자’인 그였지만, 초보 CEO(최고경영자) 노릇은 녹록지 않았다.
“혼자 투자할 때는 나만 잘하면 되지만, 사장은 회계니, 영업이니 하는 경영 전반에서 두루 챙길 것이 너무 많더군요. 특히 자금을 맡기는 고객을 발굴하는 영업이 참 어려웠어요.”
경영에서 힘에 부쳤던 그는 자문사 설립 1년 후 공동대표제로 전환해 어깨의 짐을 덜었고, 지난해 10월에는 아예 대표에서 물러났다. 회사를 나온 지금은 주요주주로서 지분만 보유하고 있다. “발전적 후퇴라는 생각으로, 자문사 밖으로 나와서 나중에 자문사의 성장을 위한 가교 역할을 하고 싶어서”였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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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업투자의 길을 택하지 않은 이유를 묻자 현실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아이들이 커가다 보니 이름없는 전업투자자보다는 조직에 소속되어 명함을 갖고 있을 필요가 있어서”였다고.
박 부장은 현재 50억원 가량의 고객 자산을 운용중이다. 시점별로 상승요인(모멘텀)을 지닌 대형주 한두 종목만 집중해 공략한다. 지난해 12월부터 현재까지 두 달 남짓 운용한 그의 수익률은 15%대다. 신용위기 이후 증시가 불안정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좋은 성적이다.
◆ “중요한 것은 수익률이 아니라 '승률'”
박 부장은 “투자자에게 중요한 것은 수익률이 아니라 승률”이라고 강조했다. “단기간에 고수익률을 기록한 것은 진정한 실력이 아니다”고도 했다.
“프로야구는 3할대 타자를 실력자라고 하지만, 주식투자에서는 7할이 넘어야 한다고 봅니다. 10종목을 사면 그 중 7종목에서 수익을 내야 한다는 거죠. 주식이 오르고 내릴 확률이 5대5니까 승률 50%는 결국 남는 게 없다는 뜻이거든요. 물론 나머지 세 종목에서 손실을 냈다 해도 어느 정도 리스크 관리가 되어 있어야 하구요.” 이렇게 말하는 그의 승률은 얼마일까? “8할대”라는 답이 돌아왔다.
끝으로 그는 전업투자자를 꿈꾸는 개인들에게는 이렇게 당부했다.
“증시에서 수익을 내는 개인투자자는 10명중 1명에 불과하다 합니다. 개미들은 3년마다 물갈이 된다고도 하죠. 그만큼 전업투자의 길은 힘든 겁니다. 그래도 전업투자를 하겠다 싶으면 제가 대형주 투자라는 저만의 길을 찾은 것처럼 자신에게 맞는 투자법을 찾으세요. 초심자의 행운도 믿을 게 못됩니다. 한 6개월 정도 해본 후 수익이 꾸준히 나오면 그때쯤 고려해 봐도 늦지 않습니다.”
④손영태…아마추어 개미가 400억 기업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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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씨에게도 슈퍼개미라는 별명이 따라 다니지만 그는 전공분야가 다르다. 데이트레이딩같은 전업투자가 아니라 기업 인수합병(M&A)에 몰두하고 있다. 처음에는 ‘개미 투자자’로 시작했지만 엔지니어로서 제조업체를 운영하게 됐고, 지금은 ‘M&A 큰 손’으로 통한다.
◆ “공모주로 번 돈, 땅 사서 불렸다”
손 씨가 개인적으로 갖고 있는 자산은 400억원을 웃돈다. 어떻게 큰 돈을 벌었냐고 물었더니 의외로 다른 답이 나왔다."1980년대 중반부터 공모주를 사모은 것이 큰 돈이 됐죠. 투자한 지 10여년 만에 40배 이상을 챙겼습니다. 이 때 번 돈으로 땅을 샀고, 지금은 그 돈으로 M&A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손 씨의 첫 직장은 대우조선해양이다. 1981년 입사했지만 개인사업을 위해 퇴사했고 곧바로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귀국한 뒤 1986년 (주)케이씨를 설립했고, 당시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선박전기부식방지장치(ICCP)의 국산화를 주도했다.
"그 때 종잣돈은 7억원 가량에 불과했습니다. (주)케이씨를 설립하기 위해 5억5000만원을 투자했고, 나머지 여윳돈 1억5000만원으로 공모주식을 샀죠. 그 때까지 주식투자 경험이 전혀 없었는데요. 모 증권사에 근무하던 지인의 권유로 포항제철(현재 포스코)과 쌍용정유(현 S-Oil),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 공모주를 나눠샀습니다"
이 공모주를 10여년 만에 팔아 40억원 가량을 마련했다는 게 손 씨의 설명이다. 1억5000만원을 투자해 40배 가까이 수익을 낸 셈이다. 그는 이렇게 불린 돈으로 울산시 울산역 부근에 땅을 샀다. 이 땅은 지금 시세차익만해도 160억원을 훨씬 넘어선다고 한다.
그가 설립한 (주)케이씨의 성장도 눈부시다. 3명에 불과했던 직원수는 46명으로 늘어났고, 한 해 매출액은 120억원(2008년말 기준)에 달할 정도로 우량한 중소기업이 됐다. 회사의 부채비율은 0%다.
◆ 아마추어 ‘슈퍼개미’…5%룰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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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손 씨는 M&A 전문가가 아니었다. 그야말로 아마추어 ‘슈퍼개미’였다. 5% 이상 지분을 확보할 경우 금융당국에 의무적으로 신고해야 하는 대량보유변동보고인 ‘5%룰’도 몰랐을 정도다. 적대적 M&A를 위해 탑엔지니어링 지분을 매입하던 중 금융감독원으로부터 한 통의 경고 전화를 받고 화들짝 놀란 그다.
탑엔지니어링을 적대적 M&A를 할 당시 그는 주식시장에서 1주당 평균 7000원의 가격에 총 90만주를 매입했다. 63억원 어치로 지분으로 따지면 6.46%인데도 지분공시제도에 따라 금융감독원에 신고하지 않았던 것.
지분공시제도는 상장주식등의 변동 정보를 빨리 공시하도록 해 해당회사 임원 및 주요주주의 미공개정보 이용을 예방하고, 적대적 M&A에 대한 합리적인 경영권 방어와 기업지배권 시장의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 만들어진 매우 기본적인 제도다.
그는 “엔지니어로 평생을 살다보니 주식의 기초상식에 어두웠다”며 “남몰래 지분을 사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금융감독원의 지분공시 요구를 받고 몹시 당황스러웠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 007작전을 방불케 한 지분매입
하지만 손 씨의 지분매입 전략은 ‘007작전’을 방불케 한다. 그는 자신과 뜻을 같이 할 수 있는 또 다른 ‘큰 손’을 찾기 위해 고의로 주식을 대량으로 내다팔았다. 또한 남몰래 지분을 사기 위해 인터넷으로만 필요한 연락을 취했다. 주가에 호재로 작용할 수 있는 M&A 소문을 철저히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혼자서 지분을 매입하다 보니 자금압박 등 어려운 일들이 발생했다”며 “여유자금이 많은 투자자들을 찾기 위해 5만주 이상 대량으로 매도주문을 체결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처음에는 주주명부를 볼 수 없으니 대량매도를 체결한 뒤 이를 사들인 창구를 통해 매수자를 찾아 다니며 자신의 편이 되어 달라고 설득했던 것.
이 같은 노력으로 손 씨는 또 다른 ‘큰 손’을 만날 수 있었다. 이름을 밝힐 수는 없지만 건설업계에서 M&A를 시도하는 슈퍼개미들이었다고 한다. 이들은 이후 이메일 등 인터넷으로만 연락을 취했다. 손 씨는 “적대적인 M&A를 시도한다는 사실이 시장에 알려지면 주가가 오를 수 있어 이메일 등을 통해서만 의견을 주고 받았다”고 설명했다.
◆ 실패로 끝난 M&A…그러나 끝나지 않았다
손 씨는 탑엔지니어링의 적대적 M&A에 실패했다. 우호지분을 갖고 있던 일부 큰 손들이 중간에 다른 M&A를 한다며 주식을 팔았기 때문이다. 10개월여 동안 주주들을 찾아다니면서 모은 지분은 6% 남짓에 불과했고 이 지분으로는 현 경영진 세력(지분 17%)을 제압할 수 없었다. 2008년 3월 정기주주총회때 현 경영진에 맞서 새로운 이사를 추천한 뒤 이사선임의 건을 놓고 표 대결을 벌였지만 지고 말았다.
이후 주가는 내리막길을 달렸다. 손씨는 M&A 호재로 주가를 올리고 돈만 챙겨 도망간다는 이른바 ‘먹튀’의 오명을 뒤집어 쓰고 시장에서 서서히 잊혀져 갔다. 하지만 여기서 그칠 수 없었다.
절치부심(切齒腐心)하며 보낸 약 1년. 그는 올해에도 자신의 마지막 열정을 불사르겠다며 다시 M&A에 나섰다. 이 달초 탑엔지니어링에 주주명부 열람을 요청했다. 1%이상인 주주들의 명부를 파악해 세력을 결집시키기 위해서다. 오는 3월 정기주주총회때 경영진을 교체한다는 목표로 또다른 007작전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약 1년 6개월만에 탑엔지니어링을 둘러싼 M&A 제2라운드를 벌일 계획입니다. 앞으로 필요하다면 더 많은 지분을 확보하기 위해 (주)케이씨의 자금까지 투입할 예정입니다" 한 번 실패를 만회하기 위한 그의 각오는 정말 남달랐다.
◆ 그렇다면 왜 탑엔지니어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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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 '나무는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고, 강물은 강을 버려야 바다에 이른다'는 말처럼 '꽃'과 '강'이라는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힘써야 회사가 발전하는 법”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면서 “대만 등 동남아시아에서 똑같은 액정표시장치(LCD) 제품을 비싼 값에 팔고 있는 일본의 히타치와 경쟁하지 못하고 내수 판매에만 매달리고 있는 탑엔지니어링의 경영진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고 질타했다.
탑엔지니어링이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전혀 노력하지 않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작년 상반기 이후 1만원을 웃돌던 이 회사 주가는 3000원대(2009년 1월말 현재)까지 주저앉았다. 주주들의 허탈감이 클 수 밖에 없다.
손 씨는 탑엔지니어링의 발전 가능성을 주목하고 있다. 부채비율이 낮은데 비해 현금보유액은 꽤 높은 우량한 업체이기 때문이다. 탑엔지니어링의 작년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전년대비 각각 159%와 2305% 급증한 1179억원과 243억원이다.을 달성, 사상 최대의 실적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손 씨는 특히 “경기도 파주로 이전한 공장부지 땅값이 천정부지로 솟아 탑엔지니어링의 자산이 크게 늘었다”고 분석했다. 그의 강력한 M&A 의지를 다시 한번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나아가 “탑엔지니어링의 현재 자산을 담보로 내세워 보다 많은 투자재원을 마련하고, 이를 바탕으로 신성장동력인 발광다이오드(LED)사업 등에 뛰어들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그는 탑엔지니어링을 상대로 벌인 자신의 M&A 시도를 두고 ‘정당한 도전’ 또는 ‘마지막 열정’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리고 자신이 경영하는 (주)케이씨와 탑엔지니어링을 상호 합병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킬 것이라는 당찬 포부도 밝혔다. 그의 M&A 시도가 성공할 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개미투자자'부터 출발한 슈퍼개미로서, 작은 회사의 사장으로서 그가 탑엔지니어링 경영진에 던지는 쓴소리는 강한 경고의 메시지로 비쳐졌다.
⑤정성일…코스닥 M&A 도전하는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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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손이 경영참여 목적으로 5% 이상 지분 취득 공시를 냈을 때 해당주 주가가 출렁이는 것은 낯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날 시장의 관심은 큰손의 ‘직업’에 쏠렸다. 바로 ‘성형외과 의사’였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서울 청담동 예성형그룹 대표 원장인 정성일씨(48)다. 정 원장은 공시를 한 이후에도 유진데이타를 계속 사들였다.부인과 공동보유자 1인 지분까지 포함해 유진데이타 지분 14.75%(2월 23일 현재)를 보유, 이 회사의 2대주주가 됐다.
◆ 의사는 왜 유진데이타에 관심을 보였나?
1995년 개원 후 줄곧 성형외과를 경영해 온 정 원장이 유진데이타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가 꼽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여러 병원을 하나의 브랜드로 묶는 병원 네트워크를 만들기 위해서 유진데이타같은 시스템통합(SI)업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병원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네트워크를 통합 관리하는 시스템 개발이 필수적입니다. 그래서 적당한 시스템통합(SI)업체를 찾던 중 유진데이타를 알게 됐지요.”
또 다른 이유로는 의료분야가 점차 산업화, 비즈니스화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증권시장에서 직접 자본을 조달할 수 있는 상장기업을 갖고 있는 것이 유리할 것이라는 점을 들었다.
“병원 사업은 아직까지 면허를 갖고 있는 의사만 할 수 있어요. 개인 자본이니 영세한 곳이 많죠. 앞으로 영리법인이 허용되면 본격적으로 산업자본이 들어와 덩치가 커질 텐데, 미리 대비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상장사를 인수 및 합병(M&A)하려는 목적은 인수 후 되팔아 차익을 얻거나, 아니면 제대로 경영해 회사를 잘 키우는 것이다. 정 원장은 자신의 M&A 목적은 후자라고 설명한다.
“유진데이타는 이렇다 할 성장동력이 없어 보여 활기를 잃은 상태인 데다 최대주주 지분율도 높지 않았죠. 그래서 회사에 영향력을 미칠 만한 규모의 지분을 취득한 뒤 양쪽이 시너지효과를 낼 만한 사업 협력안을 제안하자는 생각으로 주식을 사들이기 시작했어요.”
◆ 실패로 끝난 표대결…반토막 난 주가
그러나 이것은 ‘M&A 초보’의 순진한 생각이었다. 뜻밖에도 기존 최대주주인 김중찬 대표이사 측의 거부반응이 강했던 것이다. 최대주주는 정 원장의 제안에 별로 귀 기울이지 않았다. 오히려 유상증자를 단행해 정 원장의 지분율이 줄어들게 만드는 '반격'을 하기도 했다.
정 원장도 이에 질세라 지분율을 계속 높여나갔다. 자신의 뜻을 대변할 이사진 선임과 정관 변경도 필요하다는 판단에 임시주주총회 소집을 요구했다. 뜻을 같이 하는 소액주주들과 힘을 모아 공동보유 신고로 지분을 추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지난해 12월4일에 열린 임시주총에서 정 원장의 이사 선임 시도는 실패하고 말았다. 최대주주 측의 숨은 우호지분에 허를 찔렸기 때문이다.
“내 지분과 소액주주 등을 합해서 40만주 정도를 모아서 집중투표를 하면 대주주 및 우호지분을 감안해도 주총에서 승산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임시주총에서 집중투표제를 실시하자고 제안했구요. 그런데 대주주가 주총 현장에서 집중투표제를 할 것인지 여부를 정하자고 하더군요. 해서 표결에 붙였는데, 반대표가 더 많이 나오더라구요.”
집중투표제란 기업이 2인 이상 이사를 선출할 때, 3% 이상의 지분을 보유한 주주가 주주총회에서 투표를 요청하면 이를 실시하여 득표를 많이 한 순서대로 이사를 선출하는 제도다. 보통 주총에서는 지분이 많은 대주주가 추천하는 이사들이 선임된다. 그러나 집중투표제에서는 소액주주도 이사선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소액주주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는 대표적인 제도로 알려져 있다.
유진데이타의 주가는 임시주총에서 공격자인 정 원장 측이 패배한 이후 다소 맥을 못추고 있다. 지난해 3월초 정 원장이 지분 취득 공시를 낼 무렵만 해도 최고 2050원까지 갔었지만, 22일 종가는 1090원에 그친 상태다.
지금까지 그가 유진데이타 지분을 매입하는데 투입한 자금은 10억여 원 가량이다. 평균매입가격이 주당 1100원 정도로, 전일 종가 1090원을 감안하면 대단한 차익을 낼 분위기는 아니다. 하지만 주식 매매에 따른 차익보다 사업적인 시너지 효과를 기대한 투자 판단이었던 만큼 크게 신경 쓰는 눈치는 아니었다.
“2007년부터 조금씩 유진데이타 지분 매입을 시작할 때는 M&A로 인한 문제로 이렇게 애를 먹을 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최대주주와 적대적으로 대립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구요.”
그러나 그는 2년 가량 붙잡고 있던 유진데이타 문제로 속이 탄 적도 많지만, 그 과정에서 배운 것이 많았다며 웃었다.
정 원장은 현재 유진데이타 건에 대해 장고(長考)에 들어간 상태다.
“저랑 싸우다 지쳤는지 유진데이타 최대주주는 보유지분을 매각할 생각이라네요. 저를 포함해 매수자를 찾고 있지요. 저는 이 지분을 인수할 지 여부를 고민하는 중이고요.”
지난해 말 시중에 자금이 돌지 않는 신용경색 사태가 일어난 후 M&A 자금을 마련하기가 만만하지 않은 터다. 이 때문에 정 원장은 요모조모 따져보는 참이다.
"자금조달도 그렇고, 지분인수 후 일정 등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주주총회가 열리기 전인 2월중에는 결단을 내릴 생각입니다"
◆ 용감한 의사, 상장사 M&A에 도전한 까닭은?
아무리 병원경영 차원에서 SI업체가 필요했다고 해도, ‘의사선생님’이 M&A라는 비즈니스상의 결정을 과감히 내렸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재료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정 원장을 만나서 얘기를 해보면 이 같은 호기심은 금새 해소된다. 그는 묵묵히 진료만 하는 전형적인 ‘의사선생님’ 타입과는 거리가 멀다. 외모도 튄다. 한쪽 귀를 뚫어 귀걸이를 하고 있는 그는 남성잡지에 소개됐을 만큼 세련된 인물.
그러나 그의 진짜 튀는 점은 외모가 아니다. 평범한 의사가 아닌 ‘의료사업가’로서 그간 걸어온 발자취야말로 그의 독특한 점이다.
정 원장의 남다른 행보는 95년 전문의를 딴 후 개원 때부터 시작된다. 당시 성형외과에 메카였던 서울 명동에 이름 없는 젊은 의사가 겁 없이 개원하며 고참 선배들에게 도전장을 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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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참이면서 실력자들이 진검승부를 벌이던 ‘성형의 메카’ 명동에 개원한 그는 동시에 회원제 레스토랑도 함께 열어 두 가지 사업을 진행했다. 확실히 시작부터가 여느 의사와는 확연히 달랐다.
2년여 후에는 사업을 더 키웠다. 후배와 함께 ‘탑성형외과’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서울 청담동의 한 건물을 300평이나 임대했다. 그곳에 성형외과, 미용실, 웨딩서비스 등 미용 유관 분야를 모은 대규모 투자에 나섰다.
한창 오픈 준비중이던 97년 말에 외환위기가 터지며 마음고생도 많았다고. 그러나 어렵게 오픈한 후 다행히 영업이 잘 되어 한 시름 놓을 수 있었다. 그는 이를 기반으로 부천, 명동 등에 탑성형외과 네트워크를 확장하며 덩치를 키웠다.
◆ 실패를 딛고 일어선 사업가의 꿈
2003년에 그는 강북의 대표적인 고급 업무빌딩인 광화문 파이낸스센터 빌딩을 무대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정 원장은 이 비싼 건물 2층에 무려 780평이나 되는 공간을 임대했다. 이번에는 성형외과, 안과, 치과 등 미용 관련 클리닉의 강자들을 모아 SFC라는 ‘메디칼 몰’을 연 것. 한 건물에 여러 의료서비스를 모은 이 같은 모습은 지금은 종종 볼 수 있지만 당시만 해도 생소한 것이었다.
그는 SFC 사업을 진행하는 한편으로, 해외진출에도 눈을 돌렸다. 2003년에 SK그룹과 몇몇 병원들이 국내 최초로 중국 베이징에 합작 진출한 SK애강병원 사례가 바로 그것이었다. 당시 그는 SK애강병원장을 맡아 직접 베이징에서 병원을 운영했다.
“가서 보니 중국에서는 병원들이 이미 2002년부터 영리법인화 되어 있었어요. 언젠가 국내에서도 이런 시기가 오겠구나, 대비해야겠다, 생각했죠.”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귀한 경험을 한 것이었다.
그러나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 탑성형외과로 상승세를 탔던 그는 SFC 사업과 중국진출에서는 쓴맛을 봐야 했다.
2년여 만에 정리한 SFC 사업은 수십억의 손실을 냈다. 법적으로 병원은 지주회사 체제처럼 한 법인이 여러 의료기관을 지배할 수 없다. 컨트롤 타워가 없다 보니 운영이 쉽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고심 끝에 사업 철수를 결정했는데, 임대료도 높고 병원 시설 투자비가 만만치 않았던 탓에 손실 규모가 컸다고 한다.
SK애강병원의 경우 의료진과 대기업 간에 운영상 의견차가 있어 어려움을 겪었다. 지난해 정 원장은 SK애강병원에 출자했던 지분을 모두 정리했다.
베이징 생활 후 귀국한 정 원장은 그가 없는 동안 다소 주춤했던 성형외과 사업을 재정비했다. 그의 브랜드 ‘탑성형외과’ 대신, 치과 브랜드로 잘 알려진 예치과와 손을 잡았다. 그렇게 출범한 것이 5명의 성형외과 전문의가 뭉친 현재의 ‘예성형그룹’으로, 오는 3월이면 1주년을 맞는다.
이처럼 평범한 ‘의사’로서만이 아니라 ‘사업가’로 달려온 그였기에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때는 상장사 M&A에도 도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의대를 졸업한 의사의 80% 정도는 개원을 하죠. 의사니까 진료도 하지만, 이것은 동시에 의대 졸업생들이 대부분 개인사업자가 된다는 얘기인거죠. 의대에서도 경영과 비즈니스에 대해 가르쳐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역시 ‘의료경영 전문가’다운 생각이다. 의료사업으로 단련된 그의 경영수완이 슈퍼개미로서 코스닥 기업에 대한 M&A 성공으로 이어질 지 주목된다.
⑥윤정두, 월30만원 셋방→ELW `큰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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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사장은 지난 해 8월 주가지수가 몇달 뒤 급락세를 탈 것으로 예상된다고 자문했고, 김 씨는 이에 따라 당시 코스피(KOSPI)200 풋 워런트(Put Warrant)를 매입했다. 윤 사장의 예상은 적중했고 김씨의 종잣돈 300만원은 3개월여 만에 1억2000만원이 되어 돌아왔다.
김 씨는 JD인베스트먼트의 유료회원이다. 서울 여의도에 있는 이 회사는 김씨같은 유료회원 500여명을 상대로 주식워런트증권(ELW) 등 투자자문을 해 준다. 이 회사가 김씨 같은 회원들로부터 투자자문을 의뢰받아 ELW 시장에서 굴리는 돈은 하루평균 800억원에 이른다. ELW시장 총 거래대금이 3000억원인 것을 감안하면 JD인베스트먼트는 ELW 시장의 '큰 손'인 셈이다.
◆ 30만원짜리 월셋방 신세서 ELW '큰 손'으로
윤 사장은 국내 증권사 실전투자 대회에서 6차례나 우승한 주식매매 베테랑이다. 2007년 7월 대우증권이 개최한 실전투자대회에서는 ELW를 바탕으로 불과 2개월 동안 7681%라는 믿기 힘든 수익률을 올리며 주위를 놀라게 했다. 이 수익률은 공식적인 실전매매 대회를 통틀어 국내 최고 기록이다.
이처럼 엄청난 수익률을 내는 비법을 윤 사장에게 물어봤다. 그런데 그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변동성이 낮은 안정적인 장세에서 변곡점을 이용해 ELW에 투자한 뒤 급등 또는 급락장세를 기다려 높은 프리미엄(가격)을 받고 팔면 된다는 것. 과감한 손절매 원칙도 빼놓지 않았다. 윤 사장은 기초자산 매입가 대비 10% 이상 하락하면 무조건 손절매에 나선다.
윤 사장의 어린시절은 가난했다. 대학에 갈 돈이 없어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곧바로 군(軍)에 자원 입대했다. 그러나 제대한 이후에도 집안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원양어선을 타면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얘기만 듣고 선원 교육까지 받았다. 이런 와중에 윤 사장이 어떻게 주식시장에 뛰어든 것일까.
"1988년쯤 '프로스펙스'라는 스포츠 브랜드가 우리 동네에서 아주 유명했습니다. 프로스펙스 운동화를 한 켤레 갖는 게 소원이었을 정도였죠. 그런데 어느날 우연히 헌 책방에서 기업연감을 보게 됐는데 프로스펙스를 만들던 국제상사가 부실기업을 일컫는 '관리종목'이라는 거에요. 제게는 정말 큰 충격이었어요. 그래서 기업의 재무제표를 공부하고, 주식투자에 발을 내딛게 됐어요"
윤 사장은 이때부터 하루종일 주식투자에만 매달리는 이른바 전업투자자의 길을 걷게 됐다. 이를 계기로 비제도권 애널리스트로 불리는 '사이버 애널리스트'로 인터넷을 통해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2002년에는 마침내 인터넷상에 유료투자자문 사이트를 개설했다. 이 사이트가 JD인베스트먼트의 모태가 됐다.
주식투자를 하던 윤 사장이 ELW 투자 고수로 이름을 알려진 때는 2005년 12월. 국내 증권시장에 ELW 시장이 개장되면서 부터다. 주식매매에 정통했던 그는 단지 새로운 시장에 도전하고 싶었다며 투자동기를 말했다.
"초창기에 ELW는 아주 매력적인 투자처였어요. 잘만 활용하면 상승장뿐 아니라 하락장, 박스권 횡보 구간에서도 수익을 낼 수 있더라구요. 첫 투자상품은 삼성중공업 콜 워런트였어요"
윤 사장은 2007년 상반기 활황장세 속에서 가장 큰 돈을 벌었었다. 해운, 조선, 철강 등의 주도업종을 잘 선택한 덕분에 ELW 매매를 통해 6개월 만에 30배 가까운 고수익을 올렸다는 것. 이 때 벌어 들인 돈만 30억원이 넘는다. 윤 사장은 현재 건물이나 땅 등 부동산을 갖고 있지는 않다. 그렇지만 주식계좌 잔고를 포함한 개인자산은 백억원 가까이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2007년 7월 목표로 하던 지수2000을 돌파했는데도 불구하고 추가 수익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것이 화근이었다. 윤 사장이 투자했던 ELW 투자금액은 지수급락과 함께 하반기 동안 50% 이상 손실을 보게됐다. 그는 "커다란 성공과 실패를 동시에 경험하면서 더욱 차분하게 시장을 바라보는 시각을 갖게 됐다"고 당시를 돌이켜 보았다.
◆ ELW는 공부한 만큼 돈 벌 수 있는 곳
"한국에서 ELW 시장은 벌써 5년째 운영되고 있어요. 그런데 제가 ELW 시장을 지켜보다 보면 정말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의 성격을 표현할 때 '냄비근성'이라고 하죠. 금방 끓었다가 금방 식어버리는 그런 성격 때문에 적은 금액으로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말만 듣고 기초상식도 없이 ELW 시장에 너도나도 뛰어드는 경우가 너무 많아요"
윤 사장은 ELW에 투자해 돈 버는 방법은 오로지 공부하는 것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주식투자에 앞서 기초적인 기술적 분석이나 수급, 모멘텀, 기업가치, 재무제표 등의 분석은 빼놓지 않고 공부하면서 왜 ELW에 대한 공부는 하지 않고 상품부터 투자하는 지 이해가 안된다"고 지적했다.
ELW는 특정 주식이나 주가지수(기초자산)를 미래의 특정 시점(만기일 혹은 행사기간)에 미리 정해진 가격으로 사거나(Call) 팔(Put)수 있는 권리를 갖는 유가증권이다.
다시 말해 옵션을 유가증권의 형태로 발행해 일반 주식 거래를 위한 위탁계좌에서 주식처럼 거래할 수 있도록 유가증권으로 개발한 금융파생상품이다.
현재 기초자산은 코스피100, 코스닥 시가총액 상위 5종목, 코스피지수, 일본니케이225, 홍콩항셍지수 등이 있다.
"쉽게 말해 ELW는 주식 자체를 사는 게 아니라 사거나 팔 수 있는 권리를 사는 것이에요. 기초 자산인 주식이나 주가지수가 상승하든 하락하든 방향을 잘 예상한다면 권리를 이용해 수익을 낼 수 있는 매력적인 상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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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사장은 ELW 투자에 대해 몇가지 유의해야 할 점을 이야기했다. 그 첫째가 ELW는 만기가 존재하는 상품이라는 점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가치가 소멸되는 휘발성 금융상품인 것이다. 이 때문에 만기가 얼마 남지 않은 짧은 ELW에 투자하는 데이트레이딩은 절대 금물이라고 윤 사장은 조언했다.
"개인투자자들은 일반적으로 데이트레이딩에 치중하면서 잔존만기가 짧은 ELW를 선호하는데 경험적으로 이같은 투자전략은 오히려 큰 이익을 내기 힘들어요. 특히 잔존만기가 너무 짧으면 시간가치 하락이 급속히 진행되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당황하기 쉽죠"
윤 사장은 일발적인 장세에서는 잔존만기가 4개월에서 6개월 미만의 ELW를 평균 2개월 정도 보유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권했다. 기초자산이 충분히 시세를 내는데는 적어도 3개월은 필요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이렇게 하면 시간가치 하락도 적절하게 방어할 수 있다고 귀띔했다.
또 변동성이 큰 장세에서 ELW에 투자하는 것은 '자살행위'라고 충고했다. 윤 사장은 "ELW는 변동성에 따라 프리미엄이 붙는 상품"이라며 "변동성이 큰 장세에서는 아무리 싸 보여도 이미 높은 프리미엄이 붙어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지수가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하는 변동성 장세에서는 오히려 투자자금을 회수해 현금으로 확보, 변동성이 낮아졌을 때를 기다리는 인내심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지수가 지루한 박스권 횡보를 지속할 때 투자해야 레버리지효과(지렛대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ELW는 주식처럼 상한가(가격제한폭)가 없는 반면 손실은 투자한 돈 만큼 잃게 된다는 게 특징. 이 때문에 ELW는 단 한번의 투자로도 고수익이 가능한 투자처로 잘 알려져 있다.
손절매 원칙은 ELW 투자에서도 필수다. 차익실현과 손절매 원칙이 명확해야 ELW 투자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윤 사장은 강조했다.
그는 또 "ELW 가격을 기준으로 차익실현 또는 손절매 원칙을 세우는 것 보다는 기초자산의 등락률을 기준으로 삼아야 투자위험을 줄일 수 있다"며 "기초자산이 자신의 목표가격에 근접하면 ELW를 미리 원하는 가격대에 매도주문을 걸어놓거나 반대로 기초자산이 매입가격 기준으로 최대 10% 하락할 경우 손절매를 고민할 때"라고 권했다.외국인과 기관들이 기초자산을 매도할 경우에도 손절매를 염두에 둬야 한다고 덧붙였다.
⑦김동일,`로스컷 2% 지키는 젊은 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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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관(弱冠)을 갓 넘긴 나이에 각 증권사 실전투자대회에서 내리 4관왕을 차지하며 증권가에 혜성처럼 등장했던 김씨는 서울의 한 투자자문사 이사로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었다.
이제 30대 초반이 된 김씨는 단기매매 외길로 자산을 불려 주위의 부러움을 사는 젊은 부자다. 부동산 등 개인적으로 갖고 있는 자산규모는 50억여원에 이른다. 생활비로 월 1000만원을 쓰면서도 돈 쓸 곳을 가리는 자린고비형 부자다. 김씨는 슈퍼개미 원조이자 부(富)의 소매끝 자락이라도 붙잡고 싶어 하는 샐러리맨들의 우상이다.
아버지에게 한달 생활비로 200만원씩 꼬박꼬박 송금하는 효자이기도 한 김씨. 냉혹한 주식시장에서도 인간성을 되찾고 싶어 '주식과 결혼했다'는 말을 가장 싫어한다는 김씨는 아이러니컬 하게도 미혼이다.
실전투자대회의 귀재 9명이 투자자문사를 차리고 둥지를 튼 서울 역삼동에 있는 8층짜리 빌딩.김씨의 사무실은 이 건물 5층에 있었다.
주위 정돈이 잘 돼 있는 10㎡ 남짓한 그의 사무실 책상에는 마치 항공기 조종석처럼 평판 LCD모니터 4대가 책상 위에 병풍처럼 펼쳐졌다. 두 개의 키보드가 책상 바닥에 놓여 있고 그 사이에는 실시간 뉴스가 뜨는 7인치 모니터까지 자리잡고 있다.
"책상 위가 깨끗하지 않으면 판단력이 흐려지는 편집증이랄까 징크스가 있습니다. 매일 아침 닦고 또 닦는 것이 일과입니다."
◆ '로스컷' 자신없으면 주식시장 떠나라
김씨가 주식입문 3년만에 400만원으로 10억원을 모으고, 10년 간 50억원을 벌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로스컷'(손절매)이다.
주식 투자에서 '상식'이 최선의 전략이라는 말이 있듯 김씨는 손실이 2%에 이르면 앞 뒤 안보고 무조건 손절매해 버리는 철칙을 주식 입문이후 10년 동안 단한번도 잊지않고 금과옥조처럼 지켜왔다.
"냉혈한이라는 말도 들었습니다. 2% 손실이 나면 하늘이 두 쪽이 나더라도 팔아 치웁니다. 심지어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본전까지만 내려와도 무조건 손을 턴 적도 있습니다"
김씨는 2000년 SK증권, 2002년 메리츠증권, 2003년 LG투자증권, 2004년 동양종금증권 실적투자대회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다. 1위를 차지한 뒤 소감으로 '주식이 가장 쉬웠어요'라는 오만섞인 말을 할 정도로 운이 좋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누나의 쌈짓돈과 아버지의 전재산 2000만원을 주식에 투자했다 쫄딱 말아 먹기도 했다. 대학생으로서 학업을 병행하며 주식에 손을 댄 시절이었다.
"재미삼아 주식에 빠졌다 돈 맛을 좀 봤더니 시쳇말로 건방져 졌던겁니다. 듣기좋은 말로 가치투자라는 폼도 잡아봤던 시절이었죠"
하지만 실패는 계속됐고 이 때부터 김씨는 주식에 전력을 다하며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리고 철칙으로 세운 것이 '로스컷'이었다. 그는 10년 경력의 '주식쟁이'가 된 지금도 이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김씨가 월 단위 수익률 점검에서 손실을 본 달이 손으로 꼽을 정도로 적었던 것도 철저한 로스컷 덕분이다.
"로스컷을 못한다면 주식시장을 당장 떠나야 합니다. 냉혈한들이 득실거리는 전쟁터에서 죽을 각오를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안봐도 백전백패입니다"
장밋빛 꿈을 품고 주식 시장에 뛰어드는 개인투자자들에게 김씨는 이렇게 말한다. 인생을 걸지 않고 어설프게 가치투자로 폼을 잡으려면 주식에서 손을 떼는 것이 낫다는 얘기다.
주식 활황기에 연일 신문보도를 장식하는 주식관련 얘기나 돈 좀 벌었다는 주위 사람들의 말에 현혹돼 주식시장에 몸을 담갔던 개인투자자들은 이미 쓴맛을 보고 자의반 타의반 퇴출됐거나, 아니면 반토막 난 펀드를 부여잡고 '펀드통(痛)'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
"리먼 브러더스 쇼크가 일어났던 지난 해 10월 이후 주식시장에서 아마추어들은 거의 스스로 도태되고 말았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진정한 고수들 뿐입니다. 지금 준비없이 덤볐다가는 인생이 망가질 수도 있습니다."
손절매를 못한다는 것은 핑계일 뿐이고 그중 가장 큰 적은 바로 '자신'이라며, 로스컷을 하고 현금을 가지고 있으면 앞으로 오를 주식을 얼마든지 살수 있다고 김씨는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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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몸담고 있는 투자자문사에서 자신의 자산외에 300억원의 투자금을 굴리고 있다. 한시도 긴장감을 늦출 수 없는 형편이다. 그런 그가 펼치는 매매패턴은 가치투자가 아닌 단기매매다.
"가치투자로 3년 뒤에 들고 있는 종목이 30%가 올랐다면 잘한 투자라고 볼수 있을까요? 절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 기간 동안 마음을 졸여야 하는 심적고통에다 기회비용을 감안하면 남는게 없는 장사를 한 셈이죠"
김씨는 자신에게 주식을 좀 배워보겠다고 찾아오는 개인투자자들에게 이 말을 들려준다고 한다.
"주식투자로 은행 이자정도의 수익만 챙길 마음이라면 쉽게 투자하면 됩니다. 하지만 은행 이자정도만 챙기려고 주식투자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적은 돈으로 큰 돈을 만져볼려고 하는 것인데 가치투자로는 절대 목표를 달성할 수 없습니다"
김씨는 철저하다. 단기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는 구간에 들어가서 수익나면 팔고 빠져나오는 것. 그래서 주식은 종목을 사는 것이 아니라 '때'를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
"최근 황사 관련주가 떴습니다. 중국에서 가뭄이 계속되면서 황사 발생시기가 빨라진다는 보도는 이미 나왔었고 관련 경보도 울렸습니다. 정보를 빨리 캐치하고 그중에서 가장 센 대장종목에 몸을 실으면 수익이 나는 것은 당연한 겁니다"
김씨는 정책테마주로 짭짤한 수익을 거뒀다. 이것이 단기매매의 핵심이다. 정책적인 이슈에 대해 어느정도 파급력이 미칠 것인가를 미리 예상하고 그와 관련된 종목들이 '상승구간'에 진입하면 매수하는 전략이다.
특히 정책적 이슈로 볼 때 지금까지 없었던 새롭고 획기적인 뉴스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제조건은 자기가 산 금액에서 2% 이내에서 반드시 로스컷을 해야한다 것.
"주식시장이 아무리 나빠도 상승종목은 있습니다. 특히 정책테마주에 묶이면 장이 조금만 받쳐줘도 강하게 상승합니다. 환율이나 대체에너지, 4대강 테마 등과 관련된 종목은 이익을 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김씨는 이들 종목들이 이슈권에 접어들면 가장 상승폭이 클 것으로 믿어지는 대장 종목에 몸을 실었다가 수익을 내고 빠져나오는 전략을 구사해 왔다.
"가랑비에 옷젖는다는 말이 있죠. 손절매를 자주 하다보면 손실규모가 커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종목을 제대로 선택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는 무조건 쉬어야 합니다"
장이 다 빠지는데 상한가 종목을 샀다가 그런데도 손해보면 바로 쉬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시장상황이 정말 안좋은 것을 반증하기 때문에 그럴 때는 '쉬는 것도 투자다'라는 증시격언을 되새겨야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김씨의 매매패턴은 초단기투자 30%, 스윙 30%, 장기투자 10%내외다. 그는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때는 항상 현재 시장상황이 어떤 지를 간파한 뒤에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세 상승장인지, 하락인지 횡보인지, 코스닥 주도 장세인지, 중소형주가 이끄는 장인지를 정확히 분석해 내는 것이 기본이라는 것.
시장상황을 파악한 다음에 정말 확실하다 싶으면 강한 베팅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15%의 수익률을 여러번에 걸쳐 얻는 것도 좋지만 정말 확실하다는 생각이 들면 풀베팅을 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풀베팅을 잘하면 조그마한 상승 기회를 열 번 이상 잡는거나 마찬가지 성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죠"
끝으로 좋은 길목을 지켜야 한다는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정책 관련주는 절대 혼자 가지 않기 때문에 초기에 대장주를 잡지 못했다면 막 상승으로 추세전환을 하는 종목을 상승구간에서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 하루도 건너뛰지 않고 쓰는 주식매매 '시나리오'
김씨의 투자는 주식시장이 끝난 뒤부터 시작된다. 주식시장이 마감된 이후부터 다음날 매매할 중점 투자종목 3개를 고른다. 시간대별 매매패턴과 초단위의 결단력을 요구하는 모의 전장 매뉴얼을 완성하고 나서야 퇴근길에 오른다.
다음날 장이 시작되면 철저히 시나리오에 맞춰 트레이딩에 나선다. 매수한 종목이 30분만에 상한가로 치솟으면 추가매입에 들어가고 손절매 범위에 들어오면 가차없이 던지는 등 미리 작성해 놓은 매뉴얼에 따른다는 것.
김씨는 요즘도 점심식사를 모니터 앞에서 한다. 사무실이 아닌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는 한 달에 한 두번 정도다.
"어느 순간부터 높은 수익률이 행복감을 가져다 주지 못했습니다. 사고 싶은 것을 모두 갖고 나면 더이상 행복을 찾을 길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변화가 필요했고 이제는 외국시장에 관심을 갖고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단기매매에 대한 비판에도 대해서도 김씨는 담담했다. 단기매매가 주식시장의 변동성을 높이고 힘없는 '개미'들의 피를 빠는 것 아니냐는 힐난에 대해 김씨는 "주식시장은 팔고자 하는 사람과 사고자 하는 사람들이 충돌하는 ' 끝없는 부딪힘의 현장'"이라며 "이러한 과정에서 기업은 자금을 조달하고 투자자는 이익을 얻는 합리적 공간"이라고 말했다.
다만 1%의 디테일이 명품을 만들 듯 주식투자를 하려한다면 자신만의 세밀한 매매스타일을 빨리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인투자자들은 바둑처럼 복기를 해야 합니다. 자신이 수익률이 좋았던 기간의 매매패턴을 꼼꼼히 떠올려보고 자신만의 특기와 강점을 추려내 이를 적극 활용해야 합니다"
손실이 발생할 경우 6개월내에 이를 회복하지 못한다면 그것이 바로 주식시장에서 떠나라는 시그널로 받아들이겠다는 김씨. 그런 날이 언제쯤 오겠느냐고 묻자 김씨는 말없이 만면에 미소를 띄웠다.
⑧황성환, 옥탑방 전세→200억대 자산가로
"제가 군대생활을 할 때인 1997년. 아버님이 급성 간암으로 돌아가셨죠. 장례비용을 치르고 나니 세상에 남은 건 유산 1600만원과 저 혼자 뿐이었습니다."
서울 역삼동에 있는 투자자문회사 타임폴리오 사무실. 이곳에 만난 황성환 대표이사(33)는 "주식투자에 어떻게 입문했냐"고 묻자 힘들었던 시절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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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본격적인 투자는 사모펀드를 하면서 부터였다. 110억원 규모의 사모펀드를 운용하면서 그의 자산운용 실적은 슈퍼급이 됐다.
업계에서 그는 직접 투자는 물론 주식형 헤지펀드 '타임폴리오 사모펀드'를 운용하면서 돈을 번 슈퍼개미로 통한다. 헤지펀드란 투자 위험 대비 높은 수익을 추구하는 적극적 투자자본을 말한다. 투자지역이나 투자대상 등 당국의 규제를 받지 않고 고수익을 목표로 하며, 투자위험이 높다는 특징이 있다.
◆사촌형의 코스닥 대박에 자극…여의도서 먹고자며 주식공부
33세 젊은 나이에 200억원대 자산가가 된 황 대표의 주식투자 이야기는 군대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머니도 형제자매도 없이 외아들로 홀아버지와 함께 살았던 그는 서울대학교 지구환경공학부에 입학했다. 1학년을 마친 1996년 군대에 입대했다. 1997년 황 대표가 초년병인 일병 시절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듣게 된다. 유일한 가족인 아버지가 급성 간암 말기 판정을 받은 것. 어렸을 때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고모와 할머니 손에서 컸던 그에게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것은 충격이었다.
부랴부랴 휴가를 내고 나와 아버지를 간호했지만 아버지는 한달 반만에 돌아가셨다. 유산으로 남긴 돈에서 병원비와 장례비를 치르고 나니 손에 쥔 돈은 1600만원.
이런 상황에서 황 대표는 의가사제대를 하지 않고 자대로 복귀했다.
"21살에 혈혈단신인 놈이 뭘 알겠습니까. 일찍 제대하고 1600만원 마저 쓰면 인생이 끝이구나 싶더라구요. 군대로 복귀는 했지만 휴가를 다 써서 제대까지는 꼼짝없이 감옥살이었어요."
그는 웃으면서 과거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당시 막막한 심정을 털어 놓을 땐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도 했다. 이듬해인 1998년 11월 제대한 황 대표는 1600만원으로 학교부근인 서울 신림동에 옥탑방 전세를 얻었다. 인생 홀로서기에 들어선 것이다.
"과외 아르바이트 등을 하면서 닥치는대로 돈을 벌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벼룩시장'을 펼쳤는데 신림동 현대아파트의 작은 평수도 2억원이 넘더라구요. 일반 회사에 들어가서 이걸 사려면 어떻게 해야하나 계산해보니 20년은 족히 모야야겠다는 결론이 나오더군요."
젊은 나이에 인생의 쓴맛(?)을 보고있던 그에게 이즈음에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고종 사촌형은 귀가 솔깃한 이야기를 해준다. 1999년 당시 코스닥시장에 투자 붐이 일었을 때 새롬기술에 투자해 대박을 냈다는 이야기다.
"고모님 댁에 놀러갔는데 형이 그러더라구요. 코스닥에 새롬기술이라는 종목에 투자했는데 500만원이 순식간에 5000만원이 됐다고. 그 때 딱 감이 왔습니다."
황 대표는 1999년 가을 과외로 모은 돈 300만원으로 투자에 입문하게 된다. 급기야 1년 뒤에는 전 재산인 옥탑방 전세금 1600만원까지 모두 투자해 본격적으로 주식매매를 시작했다.
"배수진을 친 겁니다. 옥탑방 전세금을 빼서 투자한 뒤 서울 신내동에 사는 작은 어머님 집에 월세를 내면서 살았죠. 그 즈음에 취직도 돼서 여의도 생활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그는 2000년 9월 주식 콘텐츠업체 '델타익스체인지'에 입사했다. 주식매매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업체인 이 회사는 보다 편리한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직원들에게 주식 매매를 하라고 독려했다.
환경공학도였던 그가 주식투자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도 이 때다. 장중에는 매매를 하고 퇴근후에도 회사에 남아 주식공부에 매달리게 된다.
"여의도 백상빌딩에 사무실이 있었죠. 아예 이불을 가져다놓고 밤을 새며 생활을 했습니다. 아침에 건물을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깨워주시곤 했구요."
황 대표는 그 때가 정말 행복했다고 회상했다. 잠을 안자고 제대로 먹지도 못했지만, 주식시장의 재미에 푹 빠져 시간가는 줄도 몰랐다는 것. 이렇게 모은 돈은 2000년 말까지 3000만원으로 불어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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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전대회 1등 석권…대우증권에 입사하다
2001년 증권사들이 '주식투자 실전대회'를 앞다퉈 개최할 때 황 대표는 각종 대회를 휩쓸었다. 동원증권(현 한국투자증권), 메리츠증권, 굿모닝증권(현 굿모닝신한증권)이 주최하는 대회에서 1위에 올랐다. 동원증권 실전대회땐 주어진 종자돈 3000만원을 1,2월 두달간 운용해 200% 수익률을 올렸고, 상금으로 6000만원까지 받았다. 이렇게 받은 상금 덕분에 황 대표가 가진 돈은 1억5000만원으로 불어나게 됐다.
"제가 공학도 출신이라 그런지 몰라도 당시에는 뭔가 종목을 깊이 발굴하고 공들이고 그러진 않았거든요. 종목에 대해서 집착이나 욕심도 크게 없었죠. 그래서인지 잃는 것 같으면 털고 나오고 좋아 보이면 사고 그랬어요."
당시 그는 코스닥 시장에서 테마주 투자를 통해 이익을 많이 남겼다. IT(정보기술)나 보안관련 섹터가 중심이었다. 업종별로 주도주를 고른 뒤 그 종목에 몰아서 투자하는 등 공격적인 스타일로 수익금을 불려나갔다. 주가가 연속으로 상승세를 보일지라도 어느정도 수익을 올리면 미련없이 중간에 매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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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그에게 또다른 기회가 찾아온다. 대우증권의 입사권유였다. 대우증권은 2004년 당시 손복조 사장의 지휘하에 대규모 딜링룸을 만들었다. 10명의 딜러를 채용하되 구성원은 선물출신, 투신권, 재야 등으로 각 분야의 고수들을 불러 모으기로 한 것이다. 황 대표는 10명의 딜러 중 재야고수 대표로 와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대학도 간신히 졸업한 저에게 대우증권 입사는 정말 큰 기회였죠. 하지만 이미 주식매매로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는 와중에 증권사에 들어가면 개인 매매를 못하게 되니까. 갈등이 됐습니다."
증권거래법상 증권사 직원은 위탁매매를 못하도록 돼 있고 매매를 할 경우 신고를 하도록 되어 있다. 개인매매로 돈을 불릴 수는 없었지만 그의 선택은 '대우증권행(行)'이었다. 대우증권에서 1년여의 시간을 보내면서 그는 연봉과 인센티브 외에는 돈을 벌 수 없었지만 배운 것은 더 많았다고 한다.
"그동안은 제대로 된 조직생활도 못해봤죠. 대우증권은 제게 조직생활을 알게 해줬습니다. '언젠가 나도 회사를 차리면 어떻게 해야겠구나'하는 생각도 하게 된 계기였어요. 그냥 '돈많은 아저씨'가 되기는 싫었습니다."
2004년 그는 1년 남짓 다니던 대우증권에 사표를 던졌다. 그리고 2005년 5월 개인적으로 운용해왔던 모든 돈을 털어 타임폴리오를 인수했다. 그리고 자신의 인수자금을 타임폴리오 사모펀드에 넣고 운용하기 시작했다.
◆서른도 안돼 인수한 사모펀드… '대박 수익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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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헤지펀드 운용전략은 시나리오 매매다. 한 주동안 주식매매 시나리오로 짜는 것이다.
주식시장에서 일요일은 모든 변수가 다 오픈되는 날이며 한 주 동안의 매매할 종목을 선정하고 전략을 세울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투자 종목을 선정할 때 분석하는 종목들의 범위(유니버스)를 따로 두지 않고 상장 종목 전체를 대상으로 한다. 이를 위해 자체적으로 개발한 퀀트(수학을 활용한 컴퓨터 투자 모델 분석시스템 '퀀트'도 구축했다.
"조용한 일요일에 나와서 한 주의 시나리오를 구상합니다. 예를 들어 이번주에 환율이 본격적으로 꺾일 가능성이 있다 싶으면 '환율이 얼마 이상 떨어지면 무슨 무슨 종목을 담는다'는 식으로 시나리오르 짭니다."
투자방식은 단기매매인 트레이딩(trading)과 중장기투자인 인베스트먼트(investment)로 구분한다. 단기매매는 시나리오에 따라 움직인다.인베스트먼트는 중장기적으로 유망한 종목을 보유하는 것이다. 단기매매에서 시나리오에 맞더라도 수급이 꼬이는 종목은 절대 사절이란다. 유망해 보이는 종목이어도 거래가 뜸하면 건드리지도 않는다는 이야기다.
"지난해 10월초에 반등장이 한번 왔는데 뚜렷한 호재가 없었어요. 마침 11월에 펀드결산도 앞두고 있어서 리스크는 피하자는 생각으로 현금비중을 늘렸습니다. 90%까지 현금으로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10월말에 주가가 급락했고 이 때 주식을 왕창 사모았죠."
당시 타임폴리오는 반등시점에서 어떤 종목이 가장 크게 오를 지를 분석했다. 수급과 가격측면에서 고려할 때 PER(주가수익비율)가 2~3배까지 떨어진 조선과 철강주가 매력있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그에 따라 황 대표는 약 이틀간에 거쳐 조선과 철강 종목들을 쓸어담았다. 이런 재빠른 판단은 수익으로 돌아왔다.
그가 운용중인 타임폴리오 사모펀드는 설정액이 110억원. 이 중 황 대표가 개인적으로 투자한 돈도 60억원 가량이다. 고객 돈은 물론 임직원의 자산도 함께 운용하고 있어 한 번 돈을 맡긴 주주는 환매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한다.
◆작년 하락장에도 경이적인 수익률 올려...주식투자비중 적중
타임폴리오는 짧은 업력에도 불구하고 운용능력을 인정받아 최근에는 모 은행과 연기금 자금의 운용사로 선정됐다. 불안정한 시장상황에서도 타임폴리오 사모펀드의 최근 1년 수익률이 100.39%(2009년 3월말 기준,펀드평가사 제로인 발표)에 달한 덕분이다.
다른 국내주식형펀드의 1년 평균 수익률이 -27.36%인 것과 비교하면 이를 훨씬 웃도는 수치다. 타임폴리오가 설정된 2003년 이후 누적수익률은 755.75%다. 6년동안 8배가 넘게 불린 것. 그야말로 경이적인 수익률이다.
수익률의 비결은 탄력적인 주식편입 비중 조절과 자체 개발한 '퀀트' 분석의 툴(tool)에 있다고. 지난해부터 윈도 드레싱(기관투자가의 월말 종가관리성 매매), 환율상승, 실적발표 등과 같은 변수들이 발생하면서 그 때마다 유망한 종목으로 주식의 비중을 늘렸다. 그때마다 실적이나 자산같은 기업들의 기본적인 숫자에 자체적으로 조사한 자료 및 가공된 지표들을 추가한 분석 툴을 활용했다.
이같은 분석 툴을 활용한 결과, 2007년 상승장에서는 펀드중 주식투자비중이 90~100%에 달했지만 지난해 10월에는 비중을 10% 미만으로 줄였다. 최근 들어서는 70~80%를 주식투자에 투자하고 있다.
◆시나리오 매매+ 타임매매 기법…언제쯤 '매수' 기회일까?
"전 보석같은 펀드를 만들고 싶어요. 펀드가 산업을 지배하는 시대가 반드시 올 것이라 생각하고 그 중심에 타임폴리오가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펀드를 통한 기업지배까지 노리고 있는 황 대표의 다음 시나리오는 무엇일까?
"4월 중순까지는 주가가 떨어지지는 않을 겁니다. 호재가 있어서가 아니라 악재가 없기 때문이죠. 그렇지만 4월 10일 다시말해 중순부터는 빠지는 분위기가 보이기 시작할 겁니다."
약세장(베어마켓)이 이어진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매수의 기회는 언제쯤 잡을 수 있는 것일까?
"걱정마세요. 어닝 시즌이 끝날무렵 은행 등의 금융권실적들까지 발표되면 주가는 약세를 보일수 밖에 없어요. 실적이 안좋게나오면 그 때문에 주가가 약세일 것이고, 예상보다 좋아도 '그 때문에 연초에 올랐다' 이런 식의 장이 될꺼예요. 그 기회를 잘 노리면 베어마켓 가운데서도 또 한번의 수익을 챙길수 있을 것입니다."
타임폴리오는 최근 풍력(태웅, 용현BM 등)을 비롯해 IT관련주(하이닉스 등)와 제약주(SK케미칼, 일양약품 등)에 투자해 돈을 벌었다. YTN 같이 미디어 수혜주의 상승을 예측했지만 관련법안이 통과되지 않아 예상만큼 벌지 못하기도 했다.
황 대표는 젊은 나이에 개미투자자에서 사업가로 성공적으로 변신했다. 그는 이제 자신의 운용스타일을 공유하면서 성과를 낼 수 있는 후진 양성에도 신경쓰고 있다.
"지난 주에 신입사원 면접을 봤습니다. 한 응시자에게 얼마벌고 싶냐고 물으니까 1000억원을 벌고 싶다고 하더군요. 대부분 10억원 내외를 부르곤 하는데 이 친구의 배짱있고 진지한 태도가 마음에 들어 곧바로 채용하게 됐습니다."
⑨방송인 김생민 "코스닥 NO,배당주 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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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런 버핏의 투자 제1원칙이 '돈을 잃지 말라'라죠? 제가 항상 마음에 담고 있는 말입니다. 버는 것보다 잃지 않는 것을 목표로 하려고 해요."
개그맨이자 방송인인 김생민(36)씨의 재테크 철학이다. 연예가중계, 동물농장, 출발! 비디오 여행 등 장수 방송 프로그램 출연자인 김씨는 연예계 재테크 고수다. 2년전 TV를 통해 14년만에 10억원을 모은 스토리를 공개하면서 이름을 날리고 있다.
그는 서울대 의과대학 동아리 등에서 재테크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만만한 재테크'라는 책도 출간했다. 그가 모은 재산 규모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재테크 비법은 주식투자는 물론 펀드 부동산까지 아우르는 슈퍼급이다.
◆샐러리맨이 공감할 수 있는 만만한 재테크
재테크에 대해 얘기해달라고 하자 그는 막상 쑥쓰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재테크 강의를 할 땐 사실 많이 부끄럽죠. 전문가도 아닌데 저에게 주가가 오를 것인 지 물어보실 땐 대답해 주기도 난감하고요. 틀리면 미안하잖아요."
그는 광고CF 계약이나 방송출연만으로 연간 수십억원씩 버는 연예계 스타가 아니다. 뉴스에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주가를 움직이는 큰 손도 아니다. 하지만 일반 샐러리맨들이 공감하고 활용할 수 있는 '만만한' 재테크가 김생민식 재테크의 진수다.
김씨의 재테크 철학은 그의 방송경력과 일맥상통하다. 그는 연예가중계 등 몇몇 방송 프로그램의 장수 출연자다. '큰 것을 바라지 않고 안정적으로 꾸준히 하는 것' 이것은 그의 방송생활 노하우이자 재테크 철학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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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원의 가치투자'는 정말 감명깊게 읽은 책 중 하나예요. 그 책에 '나는 겁쟁이다'라는 말이 나오거든요. 정말 제 투자원칙이랑 딱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죠."
돈을 벌거나 불리는 것이 매우 중요하지만 겁쟁이처럼 조심스럽게 안전한 방법으로 투자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는 주식관련 서적으로 '워런 버핏의 실전 주식투자'(데이비드 클라크 저) 등을 추천했다. 워런 버핏에 관련된 책들은 모두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부동산 책으로는 고준석의 '대한민국 집테크'를 꼽았다.
◆적금부터 시작해 고배당주 투자로 내집 마련까지
김씨의 재테크 첫걸음은 가장 안전한 적금부터 시작됐다.
그는 1992년 대학시절 처음 TV에 고정출연하면서 한회당 7만원씩 한달에 28만원을 받았다. 이 중 20만원 이상을 매달 적금에 부으면서 돈 모으는 재미를 알게 됐다고 한다.
그는 "어린 시절 넉넉치 못한 집안 형편 때문에 내집 마련이 온 가족의 꿈이었다"면서 "처음 돈을 모으기 시작한 것도 재테크라는 개념보다는 단지 내집 마련을 하고 싶다는 꿈이 원동력이었다"고 회상했다.
20만원, 50만원씩 프로그램 자리가 생길 때마다 적금을 붓다보니 나중에는 적금 통장만 20개가 넘었을 정도.
그가 10년 동안 양복 세 벌, 구두 세 켤레로 버틸 정도로 이를 악물어가며 돈을 모은 일화는 유명하다.
이렇게 모은 돈으로 그는 1998년에는 1억2000만원을 마련할 수 있었고, 마침내 꿈이었던 내집 마련에도 성공하게 됐다.
돈 모으기에 재미를 붙이다보니 자연스레 주식에도 손을 대게 됐다. 물론 주식 생초보인 그가 처음부터 안전한 투자를 목표로 했던 것은 아니다.
김씨가 주식에 처음 손을 댄 것은 1999년께. 주식시장에 IT(정보기술) 버블이 한참 부풀어 오르던 때였다.
그는 당시 지인의 말을 믿고 유망하다는 바이오 코스닥 기업에 투자했다가 1000만원 넘게 잃었다. 투자했던 코스닥 기업은 지금은 이름도 없이 사라졌다. 김씨가 가진 주식은 휴지조각이 된 것. 그 돈을 모으려고 먹을 것 입을 것 아껴가며 저축한 것을 생각하자 눈물이 펑펑 났고, 심지어 자살충동까지 일었다고 한다.
"시장에 나도는 소문이나 아는 사람 얘기만 듣고 주식을 사는 것은 절대 안될 일이더라고요. 만약 좋은 정보를 접하게 돼도 내가 사실여부를 확인한 다음에야 투자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후로 김씨는 절대 작은 코스닥 기업에는 투자하지 않는다. 김씨가 선호하는 주식은 배당주다. 눈여겨보는 종목들도 KT&G, S-Oil 같은 전통적인 고배당주들이다.
그는 "잃지 않는 안정적인 주식투자를 원한다면 배당주를 선택하는 게 당연하다"고 강조했다.
"A라는 10만원짜리 종목이 5% 배당을 실시한다고 하면, 배당기일인 12월 말까지 보유하고만 있어도 A 종목의 가치는 10만5000원으로 오르는 거예요. 배당 가능성이 높고 건실한 기업이라면 돈을 벌게 돼 있죠."
종목을 선택할 땐 먼저 꾸준히 배당을 실시하는 우량주들을 후보군으로 선정한 다음 차트를 많이 참고한다. 급격히 빠지거나 급등하는 일 없이 꾸준히 오르는 주식을 선호한다.
그는 "완만하지만 꾸준히 상승하는 고배당주에 투자하면 3년 안에 30~40% 정도는 수익률을 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장기투자를 전제로 했을 때의 얘기다.
김씨는 "1년 이하 단기투자 게임에선 우리 같은 개인들이 기관투자가나 전문가들을 이기기 힘들다"면서 "적어도 3~5년은 갖고 간다는 생각으로 대형 우량주에 투자한다"고 밝혔다.
◆직접투자보다는 간접투자
펀드도 마찬가지다. 그가 들고 있는 펀드는 국내 인덱스펀드와 가치주, 배당주, 우량주 주식형 펀드다. 리스크가 높은 성장중심형 펀드는 선호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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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해외펀드에는 한푼도 투자하지 않았다. 중국 등 이머징마켓 해외펀드가 훨훨 날던 2007년에도 우직하게 국내펀드만 고집했다.
해외펀드에 투자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그는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시장이나 알고 싶어도 물어볼 곳이 없는 곳에는 절대 투자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씨는 마침 주가가 1280을 넘었던 지난 3일 펀드에 새로 가입했다. 이 펀드는 그야말로 장기투자용이다. 김씨에게 생후 2개월된 딸이 있는 데 그 딸이 고등학생으로 컸을 때 쯤 돈을 찾는 것이 목표다.
"펀드에 새로 가입했다고 말하면 주변에서 '돈이 어디서 나서 자꾸 펀드를 드느냐'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재테크는 종잣돈만 갖고 굴리는 게 아닙니다. 각종 수익금이나 일을 해서 번 돈의 일부라도 떼내서 계속 투자해야 돈이 불어납니다."
김씨는 투자 또는 재테크를 생활화하기 위해서 직업을 갖고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항상 펀드 등에 가입할 수 있는 현금을 '살벌하게' 갖고 있어야 하고, 그래야 짧은 시간에 수익률을 올리겠다는 집착이 없어진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김씨는 정확한 재산 규모를 공개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재테크 포트폴리오는 부동산에 50%를 투자하고 나머지를 주식과 현금처럼 유동성 자산으로 보유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김씨는 특히 "재테크를 하려면 집, 주식, 금, 달러, 석유 등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에 투자할 필요가 있다"며 "자동차처럼 되팔았을 때 무조건 가격이 떨어지는 것에는 큰 돈을 들일 필요가 없다"고 지적했다.
"내가 끊임없이 신경을 쓰고 매만져야 하는 일이라면 재테크라고 하지 않죠. 그런 것은 비즈니스고 직업입니다. 자고 있을 때에도 돈이 저절로 굴러가며 불어나야 재테크입니다. 그런 점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에 투자해야 합니다. "
'오를 만한 것에 투자하라'는 당연한 듯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그의 말에 소문난 재테크 고수로서 그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었다.
⑩지민호,"선물 시스템매매로 23배 수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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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로 증시가 직격탄을 맞았던 1998년. 지민호(46·사진) 에이스투자자문 회장도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 투신사 운용팀장이란 직책을 벗어야 했다. 하지만 10년 넘는 세월이 흘러 강산이 변한 지금. 그는 업계에서 ‘시스템 펀드’의 고수로 평가를 받고 있다.
지 회장은 '숨은 고수'로 통한다. '압구정 미꾸라지'로 잘 알려진 윤강로 KR선물 회장보다 높은 수익률을 낸 적도 있다고 한다. 환란의 한가운데 서 있었던 그가 이처럼 드라마틱한 성공을 거둔 비결은 무엇일까.
◆ IMF환란 좌절 딛고 시스템 매매 개발에 ‘올인’
“시장은 결코 예상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저도 손실에서 피해갈 수 없었죠. 하지만 이 같은 실수나 착오를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까 궁리하던 끝에 나만의 시스템을 개발하게 됐습니다. 지금도 주관을 철저히 배제하고 이 시스템대로 투자하자는 게 저의 철학입니다.”
투자비법을 알려달라는 기자의 질문에 지민호 회장은 “시스템투자는 종목을 고르거나 장세 판단을 하는게 아니라서 어떻게 보면 참 재미없는 투자방법일 것”이라며 이같이 말문을 텄다.
지 회장은 증권맨이 아닌 회계사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1984년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에 재학하던 시절, 공인회계사 2차 시험에서 수석으로 합격했다.졸업하기도 전에 채용돼 삼일, 세동회계법인 등을 거치며 9년동안 회계사로 근무했다.
회계사 정도면 안정적인 직업인데, 어떻게 전직을 결심했냐는 질문에 그는 “회계사라는 직업에 애착이 있었지만, 펀드매니저가 더 좋아보였습니다. 자신의 노력에 따라 성과가 달라진다는 점에 더 큰 매력을 느꼈죠”라고 말했다.
직장생활 9년, 남들이 안주를 꿈꾸었을 법한 시점에 과감하게 변화를 시도한 것이다.
1993년 쌍용증권 조사부 애널리스트를 거쳐 1995년 LG투자신탁(입사 당시는 LG투자자문) 주식운용팀장까지 올라갔지만, IMF 관리체제인 외환위기 여파로 1998년 LG투자증권 지점으로 옮겨야 했다. 수많은 샐러리맨들이 희생양이 됐던 외환위기의 후폭풍을 그도 피해갈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후 그의 행보는 남들과 달랐다. 좌절감에 젖어들지 않았다. 그대신 지점에서 와신상담하며 현재 자신을 고수로 올려놓은 선물 매매 시스템을 구축하는 작업에 착수하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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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필 현물이 아닌 선물에 눈을 돌린 것일까. 궁금했다.
“LG투자신탁에 근무할 때도 선물에 관심이 있어 조금씩 했었습니다. 당시에 국민연금에서 8개의 기관에 선물 투자를 위탁한 적이 있었는데요. LG투신이 수익률 20%를 제일 먼저 달성하기도 했습니다.”
외환위기 이후 증권사 지점으로 자리를 옮겨서도 그는 선물 투자를 계속했다. 당시 현물 시장은 IMF의 충격 때문에 완전히 회복이 되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선물이라면 기회가 있다고 봤던 것이다.
하지만 선물투자 특성상 이익이 나면 크게 나지만 반대로 손실도 크게 날 수 있다는 점이 고민이었다.
“1999년 초부터 경제가 IMF 그늘에서 벗어나 회복될 것이란 기대가 1998년 말에 나왔었죠. 증시도 실제로 큰 폭으로 올랐습니다. 그런데 아는 분이 ‘절대 경기가 회복되지 않는다’고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는 거예요. 경기지표는 하나도 안좋은데 엔화가치 상승과 저금리 등 금융지표만 증시에 우호적인 상황이라는 거였죠.”
이 말을 듣고 앞으로 주가가 상승할 것으로 보고 ‘롱플레이’를 하던 그는 하락에 베팅하는 ‘숏플레이’로 전향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주식시장은 단기 급등세를 탔고, 지 회장은 큰 손실을 입었다.
“소위 ‘인텔리전트하다’는 사람들이 비관하기 딱 좋은 상황이었지만 시장은 그대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투자를 하다보면 다른사람의 시각에 의해 내 소신껏 투자를 하지 못하는 때가 생기고, 그럼 위기가 찾아올 수 밖에 없다는 걸 이때 느꼈습니다.”
컴퓨터가 내는 신호대로 투자를 결정하는 ‘시스템 매매’라는게 존재하고 있다는 것도, 그 방법도 몰랐지만 지 회장은 직감적으로 시스템 매매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는 자신만의 매매 시스템을 만들었던 증권사 지점생활 시절을 지금껏 가장 고생했던 순간으로 꼽았다.
“당시 지점은 장이 끝나면 업무가 파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오후에 볼일을 보거나 포커, 고스톱 등 여흥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었죠. 하지만 저는 장이 끝나고도 지표 분석에 매달렸습니다.”
눈여겨보던 데이터를 찾아 장시간 분석하고 모의실험을 하면서, 주식시장이 열리는 날이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시스템 개발에 집중했다.
“주관적인 판단으로 투자를 하면 ‘매 순간’의 판단이 중요하지만 시스템 매매를 하려면 설계 단계가 가장 중요합니다. 어떤 요소를 어떤 로직에 적용하는지 여부에 따라 무궁무진한 방법이 있습니다.”
지 회장은 “현재 일반적인 시스템 매매는 주가지표 등 가격변수를 기초로 하고 가끔 거래량을 더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외국인 매매, 프로그램 매매 동향 등 수급관련 지표를 더해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자리를 비운 사이에 신호가 나올까 두려워 화장실도 마음놓고 가지 못할 정도였다고 했다.
하지만 시스템 구축이 끝나도 그의 고민은 계속됐다. 바로 자신이 만든 시스템의 신호를 스스로 믿지 못하는 ‘의심’이 적잖게 들었기 때문이다.
“지점에 있을때는 고객들이 이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다른 투자와 병행을 했습니다. 그런데 병행을 하다보니 내가 생각했던 시장의 방향과 시스템의 시그널이 매우 다르게 나타나는 날이 있었어요. 이 때문에 주가의 상승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거나 적당한 시점에 청산하지 못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이때부터 무슨 일이 있어도 시스템의 신호를 따라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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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민호 회장은 개인자금을 굴리기 위해 1999년 지점을 나와 2000년 선물투자사무실인 ‘에스인베스팅’을 열었다. 직원이라고 해봐야 지 회장과 컴퓨터 관련 인력 2명이 전부였다.
“1999년은 닷컴 버블이 일기 시작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아는 분이 같이 닷컴회사를 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해 왔는데, 내가 개발한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월 30%의 이익을 거둘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거절했습니다. 이후 딱 11개월 만에 23배의 이익이 났죠.”
1000만원만 투자해도 2억3000만원에 되어 돌아오는 대박을 터트린 셈이다.
“당시 선물가격이 상한가와 하한가를 밥먹듯이 치던 시기여서 고수익이 가능했습니다. 이후 이만큼은 아니어도 연평균 두자릿수의 수익률을 꾸준히 거뒀습니다.”
IMF 외환위기를 극복한 이후 시장은 별다른 추세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이로 인해 2003~2004년쯤 시장에서는 시스템 매매가 별 소용이 없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하지만 이는 단기간 뿐이었다는 게 지 회장의 설명이다.
“선물 트레이딩 시스템을 개발한지 10년이 지났는데, 매년 이익이 났고 특히 장세의 변동이 클 때는 더욱 성과가 좋았습니다.”
지 회장은 현재 자신의 정확한 재산을 밝히기를 꺼려했다. 단순히 ‘대박난 투자자’라고 인식되는게 싫다는 눈치였다.
그는 “에이스투자자문의 자본금이 62억원인데, 이 중 저의 지분율은 68.5%(약 42억원)입니다. 이는 일부이고, 더 벌었다고 보면 될 것”이라고 우회적으로 말했다.
지 회장은 2006년까지 개인 사무실을 운영했고 지인들과 함께 같은해 5월 에이스투자자문을 출범시켰다.
재야에서 계속 큰 돈을 벌 수 있었을텐데, 굳이 제도권에 관심을 기울인 이유를 묻자 “자신이 개발한 시스템을 사업에 적용해보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라고 밝혔다.
매매 시스템도 한단계 발전시켰다.
“지점 시절에 만들었던 선물 매매 시스템은 장중에 매매하고 일체 잔고를 남기지 않고 청산하는 방법으로, 하루 중 수차례 진입 진출을 반복했습니다. 제 개인적인 투자만을 위해 만든 시스템이었죠. 1분 정도의 신속한 매매를 기반으로 했기 때문에 굴릴 수 있는 자금 규모가 100억원 내외로 한계가 있었어요. 하지만 일반대중의 위탁을 받아서 투자를 하려면 수천억원을 다룰 수 있는 툴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분야도 선물에서 주식현물로 넓혔다. 작년 11월에 운용을 시작한 에이스투자자문의 주식형 시스템 펀드는 현재 누적수익률 39.64%를 기록하고 있다. 같은 기간 코스피 수익률을 24.30%를 초과한 수치다.
그는 현재 에이스투자자문 회장이자 최대주주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실제적으로 사업에 관여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개발한 시스템의 사용권을 준 상태로, 현재 다른 시스템을 연구하고 있다.
지 회장은 “시스템 투자를 성공시킨 후 해외 진출을 하는게 목표입니다. 선물, 주식뿐만 아니라 금리시장이나 해외시장에 관련된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습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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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이 아닌 ‘분석’으로 투자해야
“투자를 할 때는 무엇보다 소신을 가져야 합니다. 진입할 때 미리 청산할 조건을 정해놓고, 이것을 실제로 행동에 옮겨야 합니다.”
과거 그가 어려움을 겪었던 것처럼, 최근 경제와 주식시장의 부진으로 힘들어하는 직장인들에게 전할 메시지를 부탁하자 지 회장은 이 같이 말했다.
그는 “투자는 심리적인 측면을 잘 다루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익에 대한 욕심이나 손실에 대한 공포에 좌우되면 반드시 실패하게 돼 있습니다.”고 강조했다. 특히 레버리지 효과가 큰 선물투자에는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게 그의 의견이다.
감정이 아닌 냉철한 분석을 통한 투자를 강조하는 이유로 그는 과거 사례를 한가지 꼽았다.
“1998년 여름 코스피 지수가 최저치로 내려앉았을 당시 기관 자금들의 수익률은 그야말로 형편없었습니다. 아무도 추가불입을 하려고 하지 않았죠. 하지만 장기적으로 놓고보면 그때가 투자 기회였습니다.”
코스피 지수가 1000선을 밑돌았던 작년도 마찬가지였다는게 그의 의견이다.
그렇다면 그는 현재 주식시장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지 회장은 장세 진단을 따로 하지 않는다면서도 “지금은 유동성 장세라고 생각한다”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유동성 장세의 경우 주가가 어디까지 오를지 알수 없기 때문에 무리하지 않는 범위에서 투자해 시장에 맡겨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라고 했다.
그는 다만 “유동성 장세 이후에 시장이 하락세로 접어들면 위험 관리에 집중해야 됩니다. 올 연말이나 내년쯤에 실적 장세가 올 것으로 보이는데, 이를 대비해 실적호전주에 투자하는 것도 고려할 만 합니다”고 말했다.
반대로 시장의 침체기가 오래 지속된다면 절대적인 저평가주가 유망하다고 덧붙였다.
지 회장은 인터뷰 과정에서 자신의 이야기에 대해 ‘원칙적인 이야기’라는 말을 여러 번 언급했다.
쏟아지는 재테크 서적에 한번쯤 나왔을법한 얘기지만, 역시 '자신만의 원칙'을 가지는 것이 성공적인 투자의 시작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⑪무극선생 이승조…대박과 쪽박 넘나든 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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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극선생님, 주식투자란 무엇입니까?"
"주식투자는 나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그렇다면 이 정글 같은 주식시장에서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까?"
"우직함과 단순함이 그 해답입니다"
1984년 주식에 입문한 뒤 25년이란 세월동안 온갖 풍파를 다 겪어온 '무극선생' 이승조(50·사진)씨. 재야고수 36명과 함께 세운 새빛인베스트먼트 리서치센터장을 맡고 있는 이승조씨는 일반투자자들과 이런 선문답을 주고받곤 한다.
무극(無極). 혹자는 주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상상을 하며 천장이 뚫린 '무극'을 떠올리지만 이씨는 "'무극'이란 양 극단에 치우치지 않는 중용(中庸)을 뜻한다"고 말한다.
2000년대 초 절정에 달했던 '무극선생' 이승조씨의 인기는 지금도 식지 않았다. 두 번의 치명적인 실패와 성공투자를 통해 현재의 안정적인 삶을 찾기까지 체험을 통해 터득한 노하우가 있기 때문이다.
주식에 갓 입문한 가정주부부터 증권업계에 진출하려는 햇병아리 경제학도에 이르기까지 무극선생으로부터 답을 얻으려는 노력들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 15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둥지를 튼 새빛인베스트먼트 빌딩 5층 리서치센터에서 만난 이승조씨는 '정말 주식투자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란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시장과 맞서는 것이 아니라 나와의 싸움을 벌이는 지난한 투쟁"이라고 잘라 말했다. 몸의 힘을 빼고 미래의 경제흐름을 읽어내는 힘을 길렀을 때에만 성공할 수 있는 험난한 길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이승조씨는 단 한 번의 주식투자로 500%의 수익률을 기록하며 50억원을 쓸어 담은 원조 '슈퍼개미'다. 하지만 결과는 비참했다. 50억원을 손에 쥔 지 몇 년 지나지 않아 가정은 파탄났고 형제들은 직장에서 쫓겨났다. 같은 길을 걸었던 친구 두 명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사채업자들의 괴롭힘을 피해 떠돌이 신세를 전전해야 했다.
주식투자로 인해 인생이 어떻게 망가질 수 있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준 삶 자체였다. 하지만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방법을 배웠고 결국 기사회생했다. 그것이 무극선생이 가진 힘이자 가치다.
무극선생은 현재 직접투자는 하지 않고 제자들을 양성하며 해외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 주식은 시간여행…"몸의 힘을 빼고 긴 호흡을 가져라"
"단언컨대 테마주는 속성 상 생명력이 6개월 안팎에 불과합니다. 이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승조씨는 정책주로 포장된 테마주의 속성을 바로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최근 테마주가 활개를 치고 있지만 그 생명력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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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투자자금과 정보력을 가진 기관투자자들이 미리 선점한 테마주 광풍에 휩싸일 경우 개인투자자들은 백전백패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최근 개인투자자들이 15% 이상의 변동성을 보이는 테마주에 맛을 들여 1∼2%의 착실한 수익은 거들떠 보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함정이 있는 겁니다. 카지노 각도라는 것이 있습니다. 어느 순간에는 변동성을 보이면서도 수익률이 상승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결국에는 오른만큼 내려오는 이론입니다. 테마주는 결국 이런 양상을 보이기 마련입니다"
그는 앞으로의 경제 트렌드가 뭐가 될 것인가를 연구해 보고, 관련종목을 샀으면 당분간 주식시장을 떠나 있을 것을 권고했다. 심지어 증권사 객장 전광판은 3개월에 한번씩만 쳐다보라고 주문하기도 한다.
"2008년 10월 주가 폭락기 때 많은 사람들이 '지금 손절매해야 하느냐'고 물어왔습니다. 저는 정확히 연구하고 매수했으면 연말까지만 지켜보자고 했어요. 10명 중 8명은 이를 참지못하고 가지고 있던 주식을 던졌습니다. 하지만 당시 공포를 샀던 투자자들은 주식시장이 급격히 회복되면서 엄청난 수익을 챙길수 있었습니다"
이씨는 몸의 힘을 빼고 '시간여행'을 즐길 것을 거듭 강조했다.
"주식 전문가라는 저도 적중확률은 50%밖에 안됩니다. 지수를 맞추려고 노력도 해봤고 절대적인 투자기법을 찾기 위해 온갖 방법을 강구해 봤지만 해답은 그 어느곳에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식은 '시간여행'입니다. 단기매매 보다는 파산하지 않을 알짜 우량주에 투자해 최소 3년은 기다리는 전략이 성패를 좌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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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심자들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주식에 대한 공부를 적어도 6개월에서 1년정도는 하고 시장에 참여해야 실패 확률이 적어집니다. 분석도 하지않고 논리도 없이 다른 사람에게 의지해 투자를 하면 변동성의 깊이를 이해하지 못하게 돼 백전백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주식시장의 법칙을 알고 자신만의 매매 시나리오를 짤 수 있는 수준이 됐을 때 투자에 돌입해도 늦지 않다는 것. 특히 초심자는 전체 자산의 30% 정도만 주식에 직접 투자해 이해력을 키우고 나머지는 적립식펀드 등을 통해 긴 호흡을 배워나갈 것을 주문했다.
◆ 50억 대박에서 17억 빚쟁이로 전락
학사장교 출신인 이씨는 주식시장에 발을 디딘 것은 1984년이다. 대우증권 조사부(현 리서치센터)에 입사해 '증권맨'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하늘같은 애널리스트 고참들이 기업탐방을 하면 관련 자료를 정리하고 주요 경제소식을 스크랩하는 시절을 보냈다. 조사부에서 허드렛일을 하면서도 귀를 활짝 열어 놓았던 이씨는 정부의 한 경제정책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당시 정부는 자본자유화 5개년계획을 입안하고 증권사들의 대형화를 통해 금융산업을 발전시키겠다는 야심찬 청사진을 내놓았다. 대우증권의 경우 자본금 500억원 규모를 최대 3000억원까지 키우겠다는 복안도 포함돼 있었다.
이씨는 '이 바닥에서 정부 정책을 믿는 사람도 있느냐'는 부정적 반응이 대세일 때 남몰래 대우증권 주식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단순하면서도 우직한 투자기법이었다. 배정받은 자사주를 비롯해 직업군인이었던 아버지와 장인어른을 통해 각각 5000만원씩을 변통, 1억원의 종자돈을 만들어 전액 대우증권 주식을 매수했다. 액면가 1000원짜리 주식이 800원~900원에 거래되던 시절이었다.
장기투자를 작심했던 이승조씨는 아예 대우증권 주식을 증권증서로 발행받아 장롱 속에 고이 모셔뒀다. 당시는 관련 법규가 느슨해 증권사 직원들도 자기 회사 계좌가 아니면 주식투자가 가능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1985년까지 무덤덤하던 대우증권 주가가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으로 경제 활성화 붐을 타면서 1989년에는 5만4000원까지 치솟았다. 투자금 1억원이 50억원에 가까운 거액으로 불어나 있었다.
"지금도 1988년 올림픽을 전후로 수직상승했던 경기를 경험했던 세대들은 아무리 경제가 좋아져도 불만을 토로합니다. 당시 짜릿한 경기활성화를 경험했었기 때문입니다. 그 정도로 주식투자를 해서 돈을 벌수 있는 좋은 상황이었습니다"
주식투자의 '귀재'라는 입소문을 타면서 투자자들의 문의와 돈을 좀 굴려달라는 청탁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20대 초반에 꿈도 꾸지 못했던 거액을 만질 수 있게된 이씨는 자만에 빠지게 됐고 대리급 증권사 직원이라는 점도 싫증나기 시작했다. 망설임없이 사표를 던진 이씨는 대우증권 입사동기와 각각의 성(姓)씨 이니셜은 딴 'L&K투자정보클럽'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종자돈을 대준 양가 부모님께 10억원씩 나눠 드리고 나머지 자금과 투자자들의 자금을 굴리기 시작했습니다. 자신감이 충만했고 이제는 100억원을 벌겠다는 목표도 생겨났습니다"
직업군인인 아버지와 안면이 있는 고위 퇴역장교들 모임에서도 투자금을 선뜻 내놓았고 지인들도 돈을 좀 불려달라며 조건 없이 맡기기도 했다. 이렇게 수중에 들어온 자금이 자그마치 500억원.
하지만 비극적 종말은 그리 먼 곳에 있지 않았다. 당시가 주식시장 장세로 보면 꼭지를 찍고 대세하락기로 돌아서는 이른바 '상투'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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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이죠. 50억원 가까이 현금이 손에 들어오니까 100억원이 보이고 200억원도 보였습니다. 실력으로 번 것도 아니고 그냥 묻어뒀던 주식이 급등하며 얻은 망외소득이었던 탓에 정통한 매매기술도 없었을 때입니다. 내 돈 그릇은 조그마한데 탐욕의 한도는 그 이상었던 겁니다"
1000선을 육박하던 코스피 지수가 1992년에 400선으로 곤두박질 쳤다. 수익을 내기는커녕 매번 꼬이기만 했다.
"1992년은 제 인생에서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최악의 순간이었습니다. 분산투자, 소수종목 집중투자, 심지어 시세조종(작전)의 유혹에 이르기까지 안 써본 투자방법이 없을 정도였죠. 하지만 깡통계좌가 속출했고 투자금은 거덜 나고 말았습니다"
손실금을 회복하기 위해 일가친척들에게 손을 벌리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명동 사채시장까지 찾았던 이씨는 결국 50억원의 대박에서 17억원의 빚쟁이로 전락했다.
◆ "그래도 희망의 끈은 놓지 않았다"
빚쟁이로 쫓기는 몸이 되자 아내는 더이상 참아주지 않고 이혼을 요구했고 끝내 남남이 됐다. 군인 출신으로 완고한 성격이던 아버지한테도 쫓겨났고 당시 다섯 살인 딸, 세살 배기 아들과 함께 길거리로 나앉게 되고 말았다.
육군사관학교를 나와 앞길이 창창했던 당시 현역 대위 남동생은 월급을 차압당해 소령 진급은 커녕 군복을 벗어야 하는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공무원이던 매제는 공직을 떠나야 했다.
"죽고 싶었습니다. 투자로 돈을 모조리 날렸다는 소문이 돌자 증권사 재취직은 물론 친구들에게까지 기피인물 1호로 찍혔지요. 하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었습니다. 친하게 알고 지냈던 선배가 유학을 가며 13평짜리 오피스텔을 무료로 사용하게 해줘 간신이 아이들과 함께 차가운 이슬을 피할 공간을 마련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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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10년간 투자 트렌드가 어떻게 바뀔 것인가를 읽을 수 있는 안목을 키웠다. 미래의 직관을 키우면서 현재는 나쁘지만 미래에 과실을 얻을 수있는 종목을 연구해 나갔다. 공부를 계속하며 호구지책으로 잡다한 일을 다 해봤지만 살림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1995년에 실패에 관대한 외국계증권사 동방페레그린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와 법인영업부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외국계 증권사라 성과급제도가 활성화돼 있어 펀드매니저들의 구두까지 닦아주며 실적을 높였습니다. 성과급으로 빚도 조금씩 갚아나가 일부는 종자돈으로 챙겼지요"
하지만 1997년 IMF 구제금융이라는 직격탄과 함께 파생상품으로 큰 손실을 입은 동방페레그린이 도산하면서 또 한번의 실패를 경험하게 된다.
"그래도 희망의 끈은 놓지 않았습니다. 대우증권에 남아 있던 직원들의 도움으로 영업을 뛰면서 근근이 생명을 이어갈 수 있었죠"
그러던 이씨는 어려운 시절 밤잠을 설치며 공부를 통해 쌓은 노하우를 풀어낼 기회를 잡고 기사회생하게 된다.
"2000년까지 증시가 큰 변동성을 보이면서도 상승세를 탔습니다. 당시 주식투자자들에게 종목정보 등을 전화를 통해 제공하는 자동응답시스템(ARS)이 생기기 시작했고 여기에 뛰어들어 빚을 갚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 ARS를 통해 한 달에 최대 5억원까지도 벌었다는 이씨는 이를 기반으로 일어설 수 있었고 현재의 안정적인 토대를 마련했다. '무극선생'이라는 필명도 그때부터 사용한 것이다.
빚을 갚고 김대중 정부 초기 IT(정보기술)업종이 한창 잘 나갈때 최대의 수익을 올린 이승조씨는 그 이후 탄탄대로를 걷게 됐다. 온갖 풍파를 겪으며 체득한 경험을 바탕으로 무릎에서 사서 꼭지에서는 파는 전략을 고수해 현재는 수십억원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이렇게 재기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수많은 실패 뒤 체득하게 된 우직함과 단순함이라는 철학 때문이라고 이씨는 말했다.
◆ "1인 지식기업 100개 만드는 게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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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금융 싸움꾼을 키우려고 합니다. 제가 천당과 지옥을 오가며 경험한 노하우를 그대로 전수해 줘서 국내외 금융업계 어디서든 살아남을 자질을 갖춘 '지적 금융전사' 100명을 키울 생각입니다. '1인 지식기업'을 만드는 셈이지요."
인천국제공항 인근에 학교를 설립한다는 계획도 서 있다. 정글같은 주식시장에서 지친 금융전사들의 쉼터이자 세계로 뻗어나가는 전초기지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에서다.
현재도 독신인 이씨는 하루 일과가 정해져 있지 않다. 하루 15시간을 일하는 강행군을 하면서도 한 달에 50권의 양서들을 독파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여기에 각종 지상파 방송과 케이블TV의 출연 요청에 쉴 틈이 없다.
"주식은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단순함과 우직함, 이 철학을 잊지 않는다면 반드시 성공으로 보답받는 날이 올 것입니다" 무극선생은 모두에 꺼낸 말을 다시 되뇌였다. 천당과 지옥을 넘나들었던 그의 말은 진정한 고수가 투자자들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아닐까.
⑫3초의 승부사가 된 가출소년 `원형지정` 황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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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천명(知天命)을 바라보는 미혼의 주식고수 원형지정(49·본명 황호철). 개인투자자들 사이에서 선망의 대상이자 가장 닮고 싶어하는 재야고수 중 한 명이다. 하루에 이메일 300통이 날아들고 자신을 '주군으로 삼고 싶다'는 전화가 100통 이상씩 걸려 올 정도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전형적인 슈퍼개미다.
2년간 430만원으로 시작해 300억원대의 자산가가 된 '주식투자의 귀재' 원형지정을 만나기 위해 지난 11일 오후 찾은 곳은 사무실이 아닌 방 네 개 짜리 서울 시내의 한 아파트였다. 여의도 증권가에 번듯한 사무실 하나쯤은 있을 것이란 생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일반인이면 평생 동안 꿈도 꾸지 못할 거액의 현금을 보유한 원형지정은 아이러니칼하게도 이렇게 별도의 사무실이 없었다. 평범한 아파트가 바로 '3초의 승부사' 원형지정의 일터였다. 방 두 개에는 마치 항공기 조종석 같이 컴퓨터 시스템으로 꾸며진 책상 다섯 개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식구는 출퇴근을 하는 문하생 3명과 함께 생활하는 제자 겸 비서 1명이 전부다.
편안한 옷차림으로 취재진을 맞은 황씨는 "4년전만 해도 남 보기에 그럴듯한 사무실을 차려놓고 일했습니다. 하지만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바로 집으로 옮겼죠. 불필요한 이동시간을 절약할 수 있고 쉬고 싶을 때 언제든지 잠을 청할 수 있어 지금도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라며 미소를 지었다.
조용히 독서를 하기에도 그만이고 스트레스에 찌들어 사는 전업투자자에게 반드시 필요한 휴식도 인근에 있는 공원에서 해결할 수 있어 금상첨화라는 이야기다. 수없이 많은 부침을 통해 천당과 지옥을 오간 경험으로 이제는 나눔의 삶을 살겠다고 각오한 원형지정. 필명 '원형지정'(圓形之情)도 '모난 세상에서 둥글게 서로 돕고 살자'는 의미로 자신이 직접 지은 것이다.
훤칠한 키에 진한 쌍꺼풀이 돋보이는 호남형인 원형지정. 그는 주식투자에는 차갑고 냉정하지만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포근하고 온화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평판을 얻고 있다. 특히 대부분의 슈퍼개미들이 초야에 묻혀 은둔에 가까운 생활을 하는 반면 원형지정은 1만명에 육박하는 적극적인 팬을 확보한 열린 사고를 하는 인물로도 유명하다. 자신의 1년 주식농사 결과를 인터넷 카페에 공개해 증권가에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
2007년 2월부터 증권포털 팍스넷에 자신의 주식투자 실패담인 '똥파리 거지가 왕거미 귀족이 된 이야기'를 연재하며 개인투자자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현재도 자산 300억원 중 100억원 정도를 주식에 직접투자하고 있는 원형지정은 2009년 1분기에만 100%에 가까운 수익을 냈다고 귀띔했다.
◆ "주식에 미칠 자신 없으면 손도 대지 마라"
숱한 실패 뒤 남겨진 단돈 430만원으로 단숨에 91억원을 벌어 기사회생한 전설적 인물 원형지정도 삶을 포기한 채 도박에 빠지기도 하고 술과 담배로 하루하루를 연명해야 하는 고통의 나날들을 보낸 경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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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가 불과 2년여만에 300억원대의 거부로 거듭난 바탕은 초인적인 집중력과 피나는 노력의 결과였다.
"절실하고 절박해야 합니다. 컴퓨터 모니터 저 넘어에 수십억원에서 수백억원의 현금을 쥔 최고의 주식전문가들이 포진해 있는 정글같은 주식시장에서 절실하게 성공을 꿈꾸며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 합니다"
원형지정이 주식 매매를 하는 책상 위에는 누렇게 색이 바랜 A4용지 수십장이 포개져 붙어 있다. 순간 순간 잊지 말아야 하는 매매 철칙부터 나태해지는 자신을 추스르고 채찍질 하기 위해 써놓은 날선 각오들이 빽빽히 들어차 있다. 얼마나 읽고 또 읽었는지 가장자리에는 손떼가 가득하고 너덜너덜 닳아 헤어진 곳도 많다.
그중 한 대목은 '거지되어 자살하고 싶지 않으면 꼭 지켜라'로 시작해 '주식을 해서 수익을 내는 것은 오랜 시간이 걸린다'로 끝을 맺는다.
<철칙 : 거지되어 자살하고 싶지 않으면 꼭 지켜라>
1. 매매 시 특히 인내심을 갖고 참고 또 참아서 매수하라.
2. 충동적이고 감정적인 매매는 절대 하지마라.
3. 종목분석을 철저히 하되 저가에 매수라. 특히 테마주는 언제 폭락할 지 모른다.
4. 추격매수를 절대 하지 말라.
5. 초단타 매매는 적은 금액으로 짧게, 작은 수익에 만족하라.
6. 잦은 매매는 삼가고 신중히 생각하며 경솔히 행동하지 마라.
7. 수익이 났을때 특히 조심히 매매하고 수익을 지켜라.
8. 어떠한 경우에도 좌절하지 말고, 공부하고 노력하라.
9. 가급적 신용거래는 하지 말고 미수 쓸때는 상승 확인하고 하라.
10.탐욕을 부리지 말고 조급해 하지마라. 매매 시 한박자만 늦춰라.
11. 미친 듯 술에 취한 듯 얼토당토 않은 일을 저지를 수 있으니 조심하라.
12. 차근차근 적은 금액으로 3일을 쌓아가라.
13. 참고 또 참아서 매매하라.
14. 주식은 타이밍의 예술이다. 매수는 신중히 매도는 번개같이
15. 주식을 해서 수익을 내는 것은 오랜 시간이 걸린다.
◆ 15살에 가출해 주식 고수가 되기까지
원형지정의 고향은 강원도 인제다. 중학교 재학시절 아버지와 어머니의 불화로 항상 불안했던 가정환경을 견디지 못하고 서울로 쫒겨와 술집 종업원으로 이곳 저곳을 전전하며 밥벌이를 해야 했다.
"당시 술집 손님 중에 비싼 공짜술을 먹는 사람들이 있어 궁금하기도 해 물어봤더니 세무공무원이라는 거예요. 그렇다면 나도 세무공무원이 되어야겠구나라고 생각했죠"
고등학교 졸업장은 간신히 받았지만 교과서를 달달 외워 2년제 국립세무대학에 무난히 입학할 수 있었다. 1984년 관악세무서에서 첫 공직생활을 시작해 1992년까지 순탄하게 살던 원형지정은 돈이 모이자 이를 당시 고려증권과 동서증권에 맡겼다 모두 날리고 말았다. 충격도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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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원형지정의 꿈 같은 시절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1997년 IMF 구제금융 한파가 몰아치면서 한보그룹이 부도가 났고 원형지정의 건설사도 덩달아 무너지고 말았다.
"당시 제 개인통장에 400억원 정도 들어있었는데 전부 날아가 버렸습니다. 믿을 수가 없었죠. 더 참기 힘든 것은 그렇게 절친하게 지내던 친구며 사업상 만난 사람들이 모두 안면몰수를 해버리는 거였어요"
여인숙에 살면서 등산으로 소일을 하다 생활정보지에 난 부동산중개소의 구인광고를 보고 무작정 찾아 나섰다.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딴 뒤 경매업체에 취직했고 외환위기 여파로 쏟아지는 물건을 처리하는 것이 주임무였다.
건설업을 운영하며 직간접적인 실전 경험은 있어 자신감은 있었지만 이론이 부족해 수백권의 부동산 관련 서적을 탐독했다. 이때 서점에서 경매에 관한 책을 구입하던 중 주식 책이 눈에 띄어 한 20권 정도 사게된 것이 오늘날 원형지정을 전업투자자의 길로 이끈 단초다.
세무공무원 경험을 살려 부동산경매에서도 도사가 된 원형지정은 2년6개월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일에 몰두했다. 광고를 통해 개인고객도 유치해 나갔다. 수수료가 작은 일반주택이 아니라 남들이 하지않는 다가구주택, 술집이 끼어있는 건물, 유치권이나 지상권이 설정된 부동산 등 난이도가 높은 경매물건만 골라 재미를 보기 시작했다. 재개발, 재건축으로까지 영역을 확장했다.
이렇게 해서 2000년 퇴직 할때는 현금 83억원과 아파트 13채가 손에 쥐어졌다. 벌어놓은 돈도 있겠다 당시 주식시장이 활황이라고 해서 굿모닝증권(현 굿모닝신한증권)에 8억원, 동양증권에 4억원, 리딩투자증권에 3억원을 예치하고 투자를 의뢰했다. 그런데 2년 후에 원금 15억원이 11억원으로 줄어 있었다. 자산이 불어나기는 커녕 4억원을 날린 것이다.
"너무 화가 났습니다. 주식이 뭐길래 이렇게 돈을 날리나 싶어 2004년 1월 직접 해보자는 생각으로 전업투자자의 길로 나서게 된 겁니다. 쉬워 보였지만 막상 해보려니 눈앞이 캄캄했죠"
평소 책을 한번 잡으면 맨 뒷장의 저자이름까지 꼭 확인해야 직성이 풀릴 정도로 남다른 독서습관을 지닌 원형지정은 주식 관련책을 다시 탐독하기 시작했다. 주식 관련 책을 500여권을 독파했지만 그것은 이론일뿐 실전 매매에는 영 적용이 되지 않았다.
우량주만 사면 되는 줄 알고 삼성전자에 '올인'했다가 큰 손실을 본 적도 있다. 원형지정이 가치분석을 버리게 된 계기이자 뼈아프게 생각하는 실패 사례가 바로 당시 삼성전자 관련 매매다.
"전업투자를 시작할 때인 2004년 주위에서 삼성전자가 100만원이 가니, 120만원이 가니 하면서 바람을 잡았고, 증권사도 주가수익비율(PER) 상 저평가 돼 있다며 매수 보고서를 연일 냈습니다. 이를 믿고 50만~60만원대에 매수했고 신용으로 물량을 추가하며 버티기를 몇번 반복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주가는 39만원까지 곧두박질쳤고 41만원에 증권사 반대매매를 당하고 20억원을 날렸죠"
포기하지 않고 차트를 분석하고 새로운 매매기법 관련 책이 나오면 달달 외우는 등 더욱 주식 공부에 매달렸다. 급등구간 연구와 테마주 등에 눈을 뜨면서 2006년 초부터 조금씩 돈을 벌기 시작했다.
하지만 2006년 10월 폐암 1차 진단을 받으면서 평상심이 깨졌고 카지노와 홧김에 전재산을 옵션 투자에 쏟아부어 알거지 신세가 되고 말았다.
"주식은 가치, 수급, 심리 등 세가지 요소가 핵심입니다. 당시 저는 크나큰 실패를 경험하면서 주식투자는 매매기법도 펀더멘털도 아니고 결국 마음(심리)에 좌우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2008년말께 손실을 모두 회복하고 안정기에 접어들었을 때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았더니 의사가 깜짝 놀라더군요. 제 인생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폐암 증상이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거예요"
◆ "주식은 수급과 심리다"
본격적으로 주식에 입문한 2004년부터 안 해본 투자기법이 없는 원형지정이 집중적으로 지금의 부를 쌓은 구간은 대세 상승장과 대세 폭락장이 이어졌던 2007년과 2008년 딱 2년 간이다. 그 전에도 수십억원을 벌기도 했지만 이를 지키지 못해 깡통계좌의 경험을 네 번이나 맛봤다.
원형지정이 투자에 성공한 비결은 수급을 읽는 감각적인 눈과 방대한 독서량으로 집약된다. 기업의 펀더멘털이나 가치를 분석하지 않고 어떻게 주식의 수급만으로 상승을 예상하고 투자를 결심하는 것일까?
"주식입문 초기에는 단타매매를 주로 했습니다. 종목 관련 보고서도 보고 거래량에도 관심을 가졌을 때입니다. 하지만 주식은 수급입니다. 팔고자 하는 사람과 사고자 하는 사람들의 심리와 그 강도를 읽어내는 것이 곧 성공투자의 지름길이지요. 그 구간을 짚어내는 것은 철저히 기술적 분석을 통해 얻어냅니다"
원형지정은 우선 주가의 흐름을 결정하는 6가지 요소인 가격, 시간, 거래량, 움직임, 멈춤, 속도 등을 이해하지 못하고는 스캘퍼나 데이트레이더, 스윙투자, 중장기투자자 등 어느 누구라도 오래도록 승자의 위치에 있지 못한다고 강조한다.
"평소의 속도가 아닌 급속도로 진행하며 가속하다 멈춤 현상이 오면 분할 매도로 대응해야 합니다. 멈춤 현상이 왔다는 것은 에너지 소진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가 말하는 핵심이 바로 '매수절정' 구간이다. 상승 추세대 안에서 등락을 거듭하며 기존의 상승추세로 진행되던 주가가 어느 날 아주 강하게 상승 추세대 상단을 돌파하며 가파르게 상승하기 시작할 때, 이 구간이 매수절정 구간이라는 것.
"이 매수절정 구간을 관찰해 추세대 상단을 돌파하는 시점부터 시작해 통상적으로 마지막에 거래량이 터진 장대음봉이 나오는 음봉 몸통의 중간값까지 계산해 보니, 5거래일 안에 최하 50% 이상의 수익이 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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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형지정이 목숨같이 중요시 여기고 활용하는 분석 지표는 바로 '볼린저 밴드'(Bollinger bands)와 'RSI'(상대강도지수)이다. 매수든 매도든 진입할 수 있는 구간을 확인하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볼린저 밴드는 주가의 움직임을 밴드 내에서 판단하기 위해 고안된 채널지표이다.
"제가 사용하는 기법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터득한 저만의 기술입니다. 결국 개인투자자들도 자신만의 전략과 기법을 만들어내야 승산이 있습니다. 자신만의 매매조건을 만드는 이유는 모든 구간에서 항상 진입하는 것이 아니라 확률이 높은 구간에서만 들어가서 이익을 내고 나오는 이기는 싸움을 하기 위함입니다"
2006년 10월 폐암 1차 진단을 받고 삶을 포기하려 했던 원형지정은 어렵게 모은 수십억원의 재산을 정선 카지노와 선물 양매도에 털어붓고 사채업자에게 쫒기는 신세가 되고 만다.
"폐에 이상이 발견돼 암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의사의 말에 넋을 잃고 말았지요. 당시 암 건진을 받으러 병원에 갔는데 환자들이 밀려 있어 검사 일정조차 잡을 수 없었죠. 해를 넘겨 1월에나 가능했습니다.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하루에 10갑 가까이 피워댄 담배가 주범이었을 겁니다"
억울했다. 폐암 생존률이 3년 이내라는 의사의 말에 더 절망했다. 죽을병에 걸렸다는 소문이 돌자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도 싸늘해졌다. 잠을 잘 수도 없었고 술로 밤을 지샜다.
"삶을 자포자기 한 상태에서 정선 카지노에 가서 이틀밤에 5억원을 잃기도 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과 이란 관계가 전쟁 상황으로까지 몰릴 수 있다는 뉴스에 주식시장이 폭락할 것이란 단순한 생각으로 홧김에 풋 옵션 외가에 양매수를 걸었다 가진 전재산은 물론 사채 원금만 50억원대로 늘어나 버렸죠"
자살을 결심하고 한강을 몇 번이나 다녀왔다. 사채를 끌어다 써 병원에 갈 수도 없었다. 이때 수중에 남은 돈이 430만원이었다.
한때 자신이 많은 도움을 줬던 주식 고수 친구에 빌붙다시피 하면서 공부를 시작했다. 그 친구는 '물을 먹여 줄 수는 없고 물 먹는 방법을 알려주겠다'고 말했고 그 기간도 정확히 일주일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2007년 주식시장이 상승장이었다고 쉽게 말합니다. 저는 당시 살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호랑이 등에 타고 '볼린저 밴드'와 'RSI', 'MACD' 지표를 보며 폭등 구간을 따라다녔습니다. 그때 저의 운명을 바꾼 종목이 바로 '삼호개발'입니다"
이동평균 수렴·확산지수(MACD)는 장기 이동평균선과 단기이동평균선 사이의 관계에서 추세변화의 신호를 찾으려는 진동자 지표다. 이 지표는 서로 멀어지면(diverge) 결국 다시 가까워진다(converge)는 성질을 이용해 두 이평선이 가장 멀어지는 시점을 찾는 것이다.
2007년 2월 삼호개발이 급등하기 시작했다. 2800원부터 기본 물량을 보유하고 있었고 데이트레이딩을 병행하며 대주주 매도 공시가 나온 다음날 마지막 물량을 털어 1억4000만원을 만들었다. 매수절정 기법 전략을 활용해 성공한 것이다. 주식은 절박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교훈도 이때 얻었다.
"병원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친구들도 빨리 입원하라고 채근했죠. 하지만 한가하게 있을 때가 아니었습니다. 가장 절박한 시기었습니다. 사채업자들은 빚을 갚지 않으면 다리 잘라간다고 협박하고, 금융권에서는 하루에 100~200통 가까이 빚독촉 전화를 해댔습니다.
2006년 11월부터 2007년 1월까지 단 석달만에 50억원대 빚쟁이로 전락한 내모습이 믿겨지지 않고 그저 꿈만 같았죠. 이것을 회복하는데 2년이 걸린 겁니다"
◆ 공매도를 기다리는 고수
2007년 10월까지 대세상승기에 현물 주식투자로 믿기지 않을 정도의 성적을 거둔 원형지정은 2008년 대세하락기에는 공매도(주식대차거래·대주거래)를 이용해 그동안 벌었던 수익보다 더 많은 결실을 맺게 된다.
2007년 삼호개발로 재미를 본 원형지정은 같은해 6월말 금호산업의 챠트를 본 뒤 망설이지 않고 이른바 '몰빵'에 나섰다. 수급 분석을 마치고 매수해서 판 종목 중에 상승 시기를 정확히 맞추지 못했을뿐 안 오른 종목은 없었기때문에 자신감도 충만했다.
당시 금호산업 주식을 4만7000원에 17억원어치를 매수했다. 삼호개발로 번 돈을 모두 쏟아 붓고도 모자라 신용과 사채까지 동원해 '풀 베팅'했다.
"금호산업 주식을 사고나자 사흘연속 주가가 미끄러지기 시작했습니다. 신용거래를 한 증권사에서는 손실분을 입금하지 않으면 반대매매에 들어가겠다고 으름장을 놓기 시작했죠. 답답하기가 칼 쓴 춘양이 마음 같았습니다. 그런데 5일째 되던날 기적적으로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어요. 4만원짜리 주식이 보름만에 7만원까지 치솟았고 이 종목으로만 15억원을 챙길 수 있었습니다"
그 다음이 남해화학이다. 같은 해 10월 중순 9500원에 매수해 단기간에 최종 물량을 1만8000원에 매도해 원금을 제외하고 25억원을 벌었다. 하지만 절반의 성공이었다. 빌어쓴 사채 이자는 꼬박꼬박 늘어만 갔다. 일단 원금만 갚고 이자는 동결시켰다.
"기회는 다시 찾아왔습니다. 저는 2007년 11월부터 국내 주식시장을 비관적으로 봤습니다. 어쩌면 폭락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거죠. 그래서 대세하락기에 가장 유용한 투자기법인 공매도를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공매도는 특정 기관에서 일정 기간 주식을 빌렸다가 되갚는 것으로 빌린 주식을 판 뒤 나중에 매도가격보다 싼 값에 다시 주식을 사들여 갚는 매매기법이 활용된다. 주로 외국인과 기관들이 사용하는 투자법이어서 개인이 하기에는 관련 정보나 책도 턱없이 부족했을 때다.
국내 증권사 마다 차이는 있지만 신용 융자 대주라는 거래로 공매도와 같은 기능을 가진 제도가 있었다. 2008년 10월 이후 허용되지 않고 있지만 당시 이 거래를 이용해 수백억원의 고수익을 올린 개인투자자도 있었다. 재야 주식 고수 중에서 발빠르게 대세하락장을 예견하고 새로운 투자기법을 찾아 나선 결과였다.
그는 2008년 3월께 코스피 1350이 깨질 수 있다고 보고 공매도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증권사에서 대주가 가능하게 지정해 놓은 어느 종목의 하락이 예상될 때, 일정분의 증거금을 납부하고 현물 주식을 빌려 미리 매도하는 방법을 이용한 것이다.
실제 2008년 내내 주식시장은 내리막길을 걸었고 10월에는 리먼 브러더스 파산 사태로 글로벌 금융위기와 함께 유례없는 주가 폭락사태가 발생했다.
"그때 제 인생 전부를 통틀어 가장 많은 돈을 벌었던 것 같습니다. 수천만원짜리 계좌에서 하루에 1억원 넘는 수익이 발생하기 시작했으니까요. 재기를 노린 2년이 20년 같이 길었지만 노력한 자에게는 반드시 보상이 따른 다는 것을 깨닫는 계기가 됐습니다"
공매도는 주가 폭락을 부채질하는 주범으로 인식되면서 한국을 포함한 세계 주요 국가에서 즉각 제한조치가 취해져 현재는 금지되고 있다.
"지금은 공매도를 할 수 없게 돼 있지만 언젠가는 풀릴 수밖에 없을 겁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국내 주식에 투자하면서 위험회피(헤지) 수단으로 공매도가 필요하다며 이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죠. 그때를 대비해 현금보유 비중을 계속 늘리고 있습니다"
◆ "노력하는 자에게 기회는 온다"
원형지정이 다른 슈퍼개미들과 달리 단단한 내공을 소유한 실력파라는 근거는 그의 독서량에 있다. 지난 10년 간 3000여권의 책을 읽었고, 중요한 부분을 잊지 않기 위해 틈틈히 적어놓은 메모량만 16절지로 6000페이지에 달한다. 장이 끝나면 그날의 투자상황을 복기해 가며 매매일지를 정리하는 것도 그의 중요한 일과 중 하나다.
원형지정은 잠이 없다. 그의 수면시간은 많아야 하루 4시간 정도. 밤새 손에서 책이 떠나지 않는다. 취재진이 자택을 방문했을 때 원형지정은 '이사(李斯), 천하의 경영자'를 읽느라 정신이 없었다. 인터넷이 탄생시킨 중국 신세대 역사 스토리텔러 차오성이 쓴 이 책은 천하를 지배한 진시황의 재상 '이사'를 조명한 중국 역사서다.
그는 현실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픽션인 소설만 독서목록에서 제외할 뿐 주식 관련 서적은 물론 채근담, 역사서, 종교서 등 다양한 장르의 책들을 섭렵한다. 특히 심리가 무엇보다 중요한 주식판에서 평상심을 유지하기 위해 성경과 코란, 불경 등은 십여차례 이상 반복해 읽었다.
"'잠을 자면 꿈을 꾸지만 잠을 이기면 꿈을 이룬다'는 글귀를 무척 좋아합니다. 자면서 꾸는 꿈이 꿈이지만 시장에 갖는 희망도 한낱 꿈일수가 있습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자문자답해 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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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권 증권사 직원들을 저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수십억원에서 수백억원에 달하는 고객들의 돈을 맡아 운용하면서 무엇을 근거로 하느냐는 겁니다. 열심히 책을 읽고 공부하고 노력해야 하는데 그런 증권사 직원을 만나볼 수가 없었어요"
최근 원형지정의 중요한 일정 중 하나가 고향인 강원도에서 자신의 카페 회원들을 대상으로 투자강연회를 여는 것이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몰려드는 전업투자자들로 강연회는 연일 만원사례를 이루고 있다.
일부 카페 회원들은 '이제야 선생님 투자기법을 배워 수익을 올리기 시작했는데 이를 공개하면 어떡하느냐'며 이메일 항의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원형지정은 자신이 가진 노하우를 거의 완벽하게 공개한다. 나눔을 실천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다만 2%는 비밀의 영역이다. 그건 말이나 활자로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것.
"2011년쯤 능력있는 인재들을 키워 운용사와 '터틀 그룹'(Turtles Group)을 만들 계획입니다. 위탁매매가 아닌 제 개인 자산만을 운용할 겁니다. 강원도에서 여는 강연회는 함께 할 동지를 고르는 기나긴 여정이라고 생각해 투자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터틀 그룹은 주식매매에 대한 능력이 천부적인 감각인지 아니면 후천적교육을 통한 학습인지를 놓고 오래전부터 계속된 논쟁에서 비롯된 것으로 전해진다. 1984년 미국의 리차드 데니스(Richard Dennis)가 주식 매매가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을 모집해 이들에게 자신의 매매원칙을 교육시킨 후 성공으로 이끌었는데 이들을 '터틀(Turtles)그룹'이라고 불렀다.
슈퍼개미를 꿈꾸는 개인투자자들에게 조언 한마디를 부탁하자 원형지정은 탐욕을 버릴 것과 공부하고 노력하라는 말을 남겼다.
"제가 벤츠를 타고 다닙니다. 한번은 큰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차는 거의 폐차 수준인데도 저는 멀쩡했어요. 그래서 사치를 경계하는 저도 차는 좋은 것을 탑니다. 그런데 제 강의를 들은 한 청년이 자신도 저와 같은 기법으로 단기간에 벤츠를 탈 정도로 돈을 벌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저는 말했습니다. 제가 지금의 위치에 있기까지는 수많은 책을 읽으며 연구했고 수 차례의 자살을 결심할 정도로 낭떠러지에 떨어져 봤기때문에 가능했다고 말이예요"
세무공무원에서 건설업체 사장, 전문 부동산경매업자, 그리고 재야 주식고수까지 그의 인생편력은 참 다양하다. 주식 이후에는 무슨 일을 하고 싶으냐는 질문에 원형지정은 망설임없이 자신은 오로지 '주식'밖에 없다고 말했다.
"제가 가정을 갖고 아들을 낳는다면 네 살때 부터 주식과 골프를 가르칠 겁니다. 주식은 자본주의 꽃이고 기업과 사회를 움직이는 핵심 동력이기 때문입니다. 노예가 아닌 자유인으로 살아가게 하는 지름길이기도 하고요. 또 금융을 모르면 세상을 모르는 것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현재 수익을 공개하고 인터넷 카페 회원들 모임에 수억원을 쓰는 이유에 대해서는 실패하고 비참한 삶은 사는 수많은 개미들에게 희망을 버리지 말 것과 철저히 준비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전해주고 싶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⑬신용불량자,패밀리와 상금 휩쓸다…여수고래 박현상
"단타족이냐구요? 저희도 운용철학이 있습니다."
여수고래패밀리가 만든 투자법인 굿웨일즈(Good Whales)의 박현상 사장(36). 대부분의 전업투자자들은 '주식투자는 가족에게 절대 권하지 않겠다'고 입을 모으지만 그는 주식투자를 가족, 그것도 처갓집에 전파해 패밀리라는 이름을 달고 활동하고 있다.
그의 패밀리는 증권사가 주최하는 투자대회에서 온갖 상들을 휩쓴 '상금킬러'다. 세간에는 단순한 '실전투자대회 다수 입상자' 정도로 알려졌지만 박 사장과 처갓집 식구들은 고객들의 돈을 대리해서 관리해 주는 엄연한 투자법인의 구성원이다.
여수고래패밀리의 일터는 전남 여수가 아닌 광주다. 기자가 찾아간 곳은 광주광역시 북구 용봉동에 있는 굿웨일즈 사무실. 박 사장을 비롯해 처남과 두 명의 처제 등 4명의 고래들은 이곳에서 빠른 손놀림으로 주식매매를 하고 있었다. 모니터 앞에서 오른손과 왼손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클릭하는 솜씨에서 '단기매매 고수'의 내공이 배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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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시장이 끝나고 난 뒤 고래들은 이날의 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박 사장이 종목 선택을 제대로 하지 못한 둘째 처제를 질타하기도 한다.
"뭐야, 상한가 친 엔케이바이오. 그걸 왜 못잡았어!" (박 사장)
"다른 종목을 살피느라 미처 그 걸 잡지 못했어요. 또다른 종목들로 수익률을 맞출께요."(둘째 처제)
고래들은 1시간여의 회의를 마친 뒤 기자와 인터뷰를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의 엄격했던 박 사장의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고 부드러운 형부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순간이다. 환한 미소로 처제들을 살갑게 대하더니 휴대폰을 꺼내들고 아내와 통화하면서 '인터뷰를 시작해 잠시 통화가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둘째 아이를 임신중인 아내가 행여라도 인터뷰중에 통화가 되지 않는 고래들을 걱정할까 미리 배려한 것이다.
60㎡ 남짓한 사무실의 한쪽 벽면에는 '실력, 겸손, 공존'이라는 단어가 써있는 액자가 걸려있다. 이들의 투자신념과 철학을 반영한 것이다. 사무실 한켠에 마련된 별도공간에는 각종 대회에서 받은 트로피와 상장들이 즐비했다.
박 사장이 2005년부터 최근까지 각종 실적 주식투자대회에서 5위권 안에 이름을 올린 횟수는 11회다. 처제인 김미영씨(29)는 5회, 정미씨(27)도 10회에 달하는 수상경력을 자랑한다. 처남인 성부씨(25)도 대학생투자대회까지 합치면 상위권에 일곱 차례나 이름을 올렸다.
여수고래패밀리라는 이름은 박 사장이 증권계좌 아이디를 '돈고래'로 사용한 데에서 비롯됐다. 처가 식구들까지 증권투자에 나서면서 처갓집인 '여수'를 따서 여수고래패밀리로 이름을 붙였다.
박 사장의 고향은 전남 진도지만 처가에 대한 애정은 남다르다. 박 사장이 1남3녀 중 장녀인 부인과 결혼할 당시 처갓집은 전업투자자인 박 사장을 큰 반대없이 사위로 매형으로 형부로 받아줬다. 처제인 미영씨와 정미씨, 처남 성부씨까지 모든 형제들이 박 사장을 믿고 전업투자에 뛰어들면서 처가식구들이 든든한 지원군이자 동업자가 된 것이다.
◆단기매매에서 돈을 벌기 위한 조건…타이밍과 손절매
박 사장은 지난해 5월18일 여수고래패밀리에서 고래라는 이름을 따서 '굿웨일즈'라는 투자법인을 세웠다. 자본금 5500만원으로 세운 이 법인에 입소문만으로도 고객이 몰려들었고 그들이 맡긴 돈만도 50억원을 넘어섰다. 굿웨일즈가 주문대리인으로서 고객 계좌를 관리하고 있다.
박 사장은 "이제는 굿웨일즈의 고유자산을 불리기보다 고객돈 관리에 대부분의 시간을 쏟고 있다"며 "주식과 현금의 비중은 6대 4를 기본으로 유지하되 비율을 탄력적으로 조정하고 주로 단기 매매로 수익을 올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단기 매매가 기본이지만 종목에 따라서는 단기의 주기는 차이가 난다. 하루, 일주일, 이주일 등으로 단위를 끊어서 매매할 종목들을 선택한다. 이렇다보니 하루에 거래하는 돈이 100억원을 넘나든다. 매매수수료만 하루 최대 1000만원을 내기도 한다.
박 사장은 단기적인 운용전략에서 '타이밍'과 '손절매' 등 두가지를 중시한다.
우선 기술적인 분석에 따라 매수타이밍을 잡는다. 주가가 1차 지지선을 형성한 뒤에 눌림목(단기조정 과정)이 발생하게 되는데 눌림목을 상향돌파할 때가 바로 '매수타이밍'이라고 박 사장은 설명한다. 하지만 그 다음에 차트가 꼬부라지면 곧바로 손절매에 들어간다.
다시말해 주가는 소폭의 등락을 거치면서 일정가격대를 유지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어느 순간 오르는 타이밍이 있으며 이 시기가 주식을 사야할 때라는 이야기다.
차트가 꼬부라질 때, 즉 손절매를 해야할 때의 원칙은 '칼같은 2%'다. 단기매매에 있어서 '2%룰'은 반드시 지키는 것이 고래들의 법칙이다. 다만 대형주의 경우에는 5%까지도 가능한데 이는 대형주의 특성상 기관이든 외국인이든 누군가는 '매수'할 여력이 남아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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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더불어 전업투자자로서 행복해 보이는 박 사장도 불과 10년전에는 가족 때문에 눈물을 삼켰던 날이 많았다.
박 사장은 1973년 전남 진도에서 교육자 집안의 1남5녀 중 외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누나나 여동생과는 다르게 귀한 아들 대접을 받으며 곱게 자랐다.
청소년 시절 박 사장은 부모님 속 한 번 썩히지 않았다. 그러나 1999년 주식시장에 손을 대기 시작하면서 부모님의 기대와는 다른 길을 걷게 됐다. 당시 인터파크의 공모주를 청약했는데 배정을 받은 뒤 주가가 치솟는 것을 보면서 직접투자를 결심했다.
이듬 해인 2000년 그는 대학졸업을 앞두고 주식 직접투자에 빠져 등록금은 물론 아버지가 물려주신 집 한채와 1억5000만원의 현금까지 몽땅 날리게 됐다. 주식을 제대로 시작해 보려는 찰나에 IT(정보기술) 버블 붕괴를 만났기 때문이다.
"2000년 1월2일과 3일에는 주가가 조금 올랐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부터는 걷잡을 수없이 떨어지더군요. 당시 삼보컴퓨터 계열 IT주로 각광받던 KDS 주가는 순식간에 6만원에서 5000원까지 꼬꾸라졌습니다."
떨어지는 주가가 오르기를 기대하면서 미수금까지 동원해 물타기를 했지만 주가는 하락을 거듭했다. 결국 신용불량자가 되어버렸다. 절망에 빠져있던 박 사장을 구제해 준 것은 다름아닌 부모였다. 집안 재산을 날린 박 사장였지만 부모님은 미수금을 해결해줬고 박 사장을 신용불량자의 늪에서 건져줬다.
"아버지가 당시 당뇨 합병증으로 병원을 들락날락할 때 즈음이었습니다. 병상에 계신 아버지와 어머니의 도움으로 두 달여만에 신용불량자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신용불량자에서 벗어났지만 주식투자는 계속했습니다."
박 사장은 위기를 벗어난 뒤 2001년 결혼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병상에서 계속 치료를 받아야 했고 박 사장은 주식투자를 손에서 놓지 못했다. 오히려 몇 천만원이나 되는 아버님 병원비를 보며 '내가 주식으로 많이 버나 병원비가 더 많이 나오나 해보자'는 죽기살기 심정으로 주식투자에 매달리게 됐다. 박 사장이 병원비를 벌겠다며 주식투자에 매달리는 동안 아내는 병원에서 시아버지의 병수발을 들면서 신혼생활을 보냈다.
4년여를 병원에서 보낸 아버지는 2004년 결국 세상을 떠났다. 박 사장은 아버지의 죽음을 지켜보며 마음을 다져먹는다. 그는 아버지가 투병 중에 사용했던 휠체어에 앉아 매매를 시작했다. 오후 3시 주식시장이 끝난 뒤 휠체어를 만지면서 자신의 불효에 대한 자책감과 아버지에 대한 죄스러움에 눈물을 쏟아내곤 했다. 눈물과 후회 속에서도 그는 투자패턴을 분석하고 실패요인을 뜯어보면서 자신만의 매매기법을 만들어갔다.
◆사부(師父)이자 형부(兄夫)…처가에 주식투자를 전파하다
자신의 매매기법에 확신을 얻은 박 사장은 같은 해 광주 시내의 금융학원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이 즈음에 처제와 처남들에게 직접투자를 권하면서 '돈고래'는 '여수고래패밀리'로 덩치를 키우게 된다.
당시 미영씨는 서울에서 일반 회사에 다니고 있었고 정미씨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취업을 준비중이었다. 형부의 권유를 받아들여 각종 증권관련 자격증을 따고 여수고래패밀리로 합류했다. 전남대에 재학중이었던 처남 성부씨는 학원에서 매형의 강의를 듣고 대학생 투자대회에 참여하면서 주식시장에 발을 내딛게 됐다.
이들의 매매스타일은 비슷하다. 각자 관심있는 종목들이 조금 다를 뿐 매매하는 타이밍을 잡거나 손절매하는 방식은 같다. 처음에 사부로부터 전수받은 노하우를 그대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고 뭉치면 산다고 했던가. 트레이딩의 세계에서 함께하는 기쁨은 큰 수익률로 돌아왔다. 투자대회에서 개인참가전은 물론이고 단체참가전까지 휩쓸었다. '돈고래' 또는 '후천성돈결핍증'이란 아이디로 각종 대회에 참가한 뒤 오늘날 '여수고래패밀리'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 2007년 부상으로 받은 상품권을 이용해 홍콩과 중국으로 가족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패밀리들은 연습삼아 증권사 투자대회를 참여하기 시작했고 상위권에 들면서 종잣돈을 불리기 시작했다. 이들이 3위권에 들어 각종 상을 휩쓴 대회들만도 2006년에 6개, 2007년에는 5개, 2008년에는 10개에 달한다.
◆지난해 4분기에 원금손실…"전투적인 매매로 수익률 폭발할 것"
그렇지만 여수고래패밀리는 올해들어선 각종 투자대회에 전혀 참여하지 않고 있다. 외부활동도 최대한 자제한다는 방침이다. 이는 지난 4분기에 입은 손실을 복구하고 내실을 기하기 위해서다. 투자대회의 이점이 예전보다 상대적으로 많이 줄어들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2008년 10월말에서 12월은 악몽같은 시간이었습니다. 계좌가 반토막이 나는데 처참한 심정이었죠. 하지만 이럴수록 '겸손'하자며 마음을 다져먹고 회사 구조조정을 단행했습니다."
박 사장은 2008년 5월 투자법인 굿웨일즈를 설립할 때만해도 자산운용사까지 사업을 확대할 요량이었다. 서울사무소는 파생상품을 주로 다루고 그 분야 전문가 2명을 영입했다. 광주사무소는 고객들의 돈을 받아 패밀리를 주축으로 현물매매에 나섰다.
대회에서 경험을 바탕으로 50억원의 고객돈을 크게 불리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리먼 브러더스 파산으로 인한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좌절을 경험했다. 고객들의 자금은 큰 타격이 없었지만 고래패밀리 개인 계좌는 손실이 컸다. 중소형 종목들은 손절매를 했지만 금호산업, KB금융, 두산중공업 등 대형주에 투자했던 고래패밀리들의 자금은 반토막이 됐다.
박 사장은 자신이 관여할 수 없는 분야인 파생상품 부분을 정리하기로 결심했다. 지난해 12월말 서울사무소의 문을 닫고 광주사무소만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광주사무소에서도 패밀리를 제외한 직원들을 모두 내보냈다. 사업을 늘리기 전인 지난해 4월의 대형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 셈이다.
"시장이 우리에게 겸손하라고 충고해 준 것 같습니다. 고객들의 돈에서 손실을 보게된 뒤엔 더욱 전투적으로 매매에 매달렸습니다."
박 사장을 비롯한 패밀리들은 요즘 어느 때보다 전투력을 발휘하고 있다. 특히 3월부터 시장이 살아나기 시작하면서는 ‘선도주(先導株)’의 움직임을 잘 살폈다. 선도주란 주가지수 또는 업종지수의 움직임에 앞서서 이끌어 주는 종목을 말한다.
"업종별로 선도주가 오르기 시작하면 나머지 종목들은 따라 오르기 십상입니다. 여기에 주가가 저평가된 주식을 골라 ‘매수’에 들어갔습니다."
박 사장이 꼽은 선도주는 다음과 같다. 건설업종에서는 GS건설이나 대림산업이 선도주이며 금융주에서는 KB금융을 시작으로 하나금융지주, 신한금융지주의 순으로 주가가 움직인다. 중공업에서는 대우조선해양, 한진중공업, 삼성중공업 등이 앞서서 업종의 주가를 주도한다는 이야기다.
고래패밀리들은 지난 4분기에 입었던 손실을 70%까지 복구했다. 고객들의 돈은 최대한 안정성과 수익성을 동시에 잡으면서 매매하고 있다. 그러나 월등한 수익률을 올릴 때까지 실전투자대회 참여 등 외부활동을 자제한다는 방침은 아직까지 변함이 없다.
박 사장은 실전투자대회가 직접투자하는 것과 비교해 상대적인 장점이 떨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주식시장은 커지고 있고 개인투자자들의 저변도 확대되고 있는 반면, 실전투자대회의 상금이나 부상은 물가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주장이다.
"주식투자자들은 집을 사기위해 가족을 위해 등의 목적으로 주식투자를 합니다. 이러한 점을 헤아린다면 실전투자대회의 부상으로 단순히 상금뿐 아니라 '아파트'나 '가족해외여행권' 등을 내걸어야 맞지 않을까요? 상금도 몇 년동안 비슷한 수준인데 투자자들이 많이 몰려들 수 있는 수준으로 높여야 합니다."
각종 실전투자대회를 휩쓴 고수답게 대회에 대한 조언을 빼놓치 않았다. 상금의 수준을 높인다면 예전에 투자대회를 휩쓸었던 개미들까지도 다시 끌어모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실전투자대회는 '프로의 격전지'로 한단계 높은 투자대회로 주목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가족을 생각할 수 있는 부상들을 내놓는다면 투자자들이 단순하게 '돈이나 따자'는 개념에서 '나는 왜 주식투자를 하는가'의 목표의식도 생길 수 있다는 설명이다. 상을 타게 된 투자자라면 든든한 가족들의 후원까지 덤으로 받을 수 있는 계기도 마련될 수 있다고 박 사장은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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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보다 수익률이 앞서는 트레이더 될터"
"말만 앞서는 전문가는 되고 싶지 않습니다. 실전에서 돈을 버는 모습을 보여준 뒤에 투자를 권하든 조언을 하든 해야겠지요."
박 사장이 2006년 모 증권사 실전투자대회에서 상위권에 입상을 하고 '부드러운 주식, 더러운 주식'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한적이 있다. 당시 주최 증권사의 리서치센터장도 강의에 나섰는데 그가 '하이닉스반도체'를 추천했다고 한다.
"하이닉스는 주식매매를 좀 한다하는 사람들이 느끼기에는 오를 만큼 오른 꼭지수준의 종목이었습니다. 그런데 증권사 리서치 센터장이라는 분이 하이닉스를 꼽더라구요. 이건 아니다 싶었죠. 꼭지종목을 추천하는 그 분이 과연 직접투자해서는 얼마를 벌 수 있을까요? 저는 그 날을 마지막으로 누구 앞에 나서서 강의는 하지 않습니다. 직접 수익률로 보여줄 뿐이죠."
박 사장이 당시에 꼽은 '더러운 주식'은 이른바 작전 내지 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추정된 종목들이다. 보이지 않는 세력들은 교묘한 주가흐름으로 개인투자자들이 '매수'에 나서도록 유인하고 정작 팔려고 할때는 팔 수 없도록 한다. 결국 피보는 개미들은 시장에서 전사하고 계좌도 멍들게 되기 때문에 아예 가까이 하지 말라는 박 사장은 조언했다.
현재 박 사장을 비롯한 패밀리들이 주목하고 있는 테마는 환경이다. 환경관련 종목중에서도 테마는 순환되는데 일부 테마들이 소외받고 있다는 설명이다.
박 사장은 특히 바다에 적조현상이 발생할 것을 대비해 적조테마주를 주목하고 있다. 앤엘바이오는 적조테마 중 하나로 예상돼 매수했지만 바이오테마로 휩쓸려 너무 급등해 팔아치웠다고 한다. 나머지 종목들에 대해서는 공개를 꺼렸지만 이들 종목중 하나는 주요 주주로 참여할 의향이 있다고 귀띔했다.
패밀리들은 지금 높은 수익률을 내는 것과 앞으로의 계획이 가장 큰 고민꺼리다. 사업을 키우기 위해 법인까지 설립했지만 1년도 안돼 실패를 겪었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은 규모로 사업을 유지하는 데 의미를 둘 것인지 아니면 예전 결심과 같이 사업을 키워갈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
"고민이 많이 됩니다만 사업을 키우기 위해 먼저 내실을 다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먼 훗날을 생각하면 이런 수준으로만 머물러서는 안되지요. 자본시장법 이후에 헤지펀드의 설립추이와 자산운용업계의 변화를 살펴보면서 사업확대를 살펴보겠습니다."
남들은 가족이라면 말린다는 주식투자를 가족이 함께 하기에 힘이 난다는 박 사장. 그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돈에 구애받지 않는 것'을 운용의 목표이자 인생의 목표로 삼고 있다. 그런 그도 처제들에게는 신랑감으로 △주식을 하지 말 것과 △나(형부)보다 나이가 적을 것을 주문하곤 한다.
"주식투자의 과정은 어려운 과정입니다. 그 어려운 과정은 비정하고 인간적이지 못하죠. 돈을 잃은 만큼 자책감도 많이 듭니다. 힘든 짐을 지는 사람은 한 집에 하나면 족합니다."
박 사장의 마지막 한 마디에는 온갖 풍파를 겪으며 11년동안 주식투자를 해 온 고뇌와 역경의 무게가 실려 있었다.
주식투자로 7000배 번 슈퍼개미…400만 투자자 열광
증시에서 '대박'을 꿈꾸고 있는 개인투자자들은 항상 성공한 개미투자자 '슈퍼개미'를 닮고 싶어한다. 짧은 기간에 쌈짓돈을 뭉칫돈으로 만들어 낸 슈퍼개미는 많은 이들에게 선망의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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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시장에서 온갖 역경과 고난을 이겨내면서 나름대로 노하우를 터득, 투자원금을 적게는 수십배에서 많게는 수천배로 불린 슈퍼개미들의 이야기는 397만 주식투자자(2008년말 현재 주식보유 기준,예탁결제원 집계)에게 희망을 심어준다.
한국경제신문의 온라인미디어 한경닷컴(www.hankyung.com)이 연재하고 있는 기획 시리즈 '슈퍼개미 열전'에 등장한 슈퍼개미 12인은 불과 6개월만에 30배 수익을 내기도 했고, 단돈 430만원을 2년 만에 300억원(7000배)으로 만들기도 했다.
한경닷컴의 슈퍼개미 열전 시리즈가 조회수 2000만건(13편 누적기준)을 넘기며 한국 언론사상 단일 기획물 최다클릭수를 기록한 것도 슈퍼개미들이 경이적인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 덕분이다.
◆경이로운 수익률…6개월만에 30배, 2년만에 7000배
단기매매를 전업으로 하고 있는 '젊은 부자' 김동일씨(나눔투자자문 이사)는 자신의 쌈짓돈 400만원을 단 3년 만에 10억원(250배)으로 불렸고, 이를 또 10년 만에 50억원으로 만들었다.
카드깡 신세에서 수억대 연봉자가 되기까지 8년이 걸린 초단타 매매스타일의 전업투자가 손용재씨도 현재 한 달 수익률이 평균 40~60%에 달한다. 또 나름대로 운용철학을 갖고 있는 '단타족' 여수고래 패밀리의 박현상씨는 100만원을 단숨에 10억원(1000배)으로 만들었다.
가치투자의 고수인 김정환 밸류25 대표와 박진섭 하이투자증권 부장은 각각 200배와 50배의 투자수익을 올리며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무극선생' 이승조씨와 '원형지정' 황호철씨는 재야고수로 널리 알려진 투자의 귀재. 특히 황씨는 숱한 투자실패와 폐암까지 극복한 뒤 단돈 430만원으로 300억원(약 7000배)을 벌어 그를 따르는 투자자들에게 '주군'으로까지 불리고 있다.
원조 슈퍼개미의 계보를 잇고 있는 손영태 (주)케이씨 사장은 1억5000만원을 10년 동안 공모주에 투자해 40억원을 벌었고, 파생상품인 주식워런트증권(ELW) 시장의 '큰손' 윤정두 JD인베스트먼트 대표도 6개월 만에 30배 수익을 내며 시장에 이름을 알린 주인공인다.
◆실전투자도 '싹쓸이'…6관왕·역대 최고수익률
이들 슈퍼개미는 그 동안 증권업계 실전투자대회에서도 이름을 날렸다. 각 증권사가 매년 개최하는 실전투자대회에 참가해 경이로운 수익률로 대회 선두 등 상위권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김동일씨는 2000년부터 2004년까지 치러진 실전투자대회에 나서 4차례 우승했다. 2000년 SK증권 실전투자대회에서 우승(수익률 96%)을 시작으로 2002년 메리츠증권, 2003년 LG투자증권, 2004년 동양종금증권이 개최한 대회에서 모두 1위로 입상했다.
손용재씨는 지난해 하이투자증권과 교보증권이 연 실전투자대회에서 각각 388%와 697%의 누적평균수익률로 다른 참가자들을 압도하며 우승했다. 박현상씨는 2005년부터 4년간 5위권내 입상만 11차례를 기록, 자신의 투자기법을 뽐냈다.
실전투자대회 사상 역대 최고 수익률 기록(7681%)을 갖고 있는 윤정두씨는 대회 통산 6관왕을 차지한 베테랑 투자자다. 윤씨는 2007년 제 9회 대우증권 실전투자대회 마스터리그에 참가해 ELW와 주식을 병행 투자해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한편 한경닷컴 온라인뉴스국 증권팀은 그동안 게재된 슈퍼개미 열전 시리즈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추가 취재를 통해 내용을 대폭 보강한 단행본 '슈퍼개미의 투자비밀'
# by | 2009/06/11 13:17 | 섹세스칼럼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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